오랜만의 연구회 토론 준비를 위해 김건종의 마음의 여섯 얼굴을 읽었다. 1차 토론은 우울, 불안, 분노에 해당하는 장이었다. 잠시 우울하던 차에 읽게 되어서인지 우울에 대해 좀 더 관심깊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쿨함과 우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울은 부정적 개념으로 쿨함은 긍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우울을 겪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려는 측면이 있고, 쿨한 사람들은 삶을 회피하려는 측면이 있음을 언급했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잠시 우울에 빠져있던, 쿨함을 추구하려 했던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구절은 애착 이론 창시자 보울 비(John Bowlby)의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도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고 확신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구절이다. 세상에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보면 새삼 깊이 공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끔 주제넘게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이런 내가 되었으면 교사로서 이 보다 더한 보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토론을 해서인지 설레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루기에 괜찮은 주제라는 생각하에 토론을 시작했다. 1장 우울에 대하여 맡으신 선생님이 간략히 요약해서 설명을 해주시고 토론 주제로 '깊은 우울에도 내가 생(生)의 쪽만을 바라보게 해 준 건 무엇이었을까? 소중한 사람 그리고 나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생의 쪽은 무엇이 있을까요? '라는 주제를 제시해 주셨다.
'누군가의 도움', '약 복용', '취미에 빠짐', '주변 친구들과 통화, 지지 대상 확보?' 등의 의견을 제시해 주셨다. 나는 약 복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아마 심각하게 우울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경험해 본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보니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약 처방받으면 우울 및 신체화(예:통증, 몸살 기운, 소화불량 등)가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기운을 회복해 운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을 통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융은 우울은 '우리의 깊은 무의식이 의식적 자아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했다. 저자는 사례를 통해 풍요로운 현실의 삶과 반대로 내면의 삶이 많이 메마르면 거기에서 우울감이 일어날 수 있고, 내면보다 바깥으로 너무 치우쳐진 삶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우울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융의 말처럼 우울이 찾아오면 '나를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라 생각하고 나의 내면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자.
저자는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저녁>이라는 작품을 보고
"저 광대의 고독과 우울은 한편으로는 혼란이지만 한편으로는 깨달음이고, 한편으로는 고통이지만 한편으로는 받아들임이다. 우울이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삶에 대한 솔직한 인식을 가져온다."이라고 했다. 유명한 실험을 소개했다. 우울증 집단과 일반인 집단이 좀비를 공격하는 비디오 슈팅게임을 할 때, 우울증 집단이 처리한 좀비의 숫자를 정확하게 맞혔다고 했다. 저자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현실적인 사람은 우울한 사람이고, 기분이 괜찮을 때 우리는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둘째가 중학교 입학하고 너무 힘들어해서 현재 상담을 받고 있다. 어제 검사 결과로면담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약간의 우울증세가 있다고 약 처방을 권유해서 흔쾌히 동의를 했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 토론한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 둘째의 마음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 여리고 배려심 많은 둘째가 현실을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나 타인을 너무 배려하는 둘째가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