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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lilla Feb 21. 2023

조금은 불편한 삶이 그립다.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1,2를 읽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의 추천으로 읽었다. 읽는 순간부터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튜브보다 영화보다 재미있었다. 난 이런 류의 따뜻한 소설이 좋다. 따뜻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감정의 샘이 퐁퐁 솟아 이런 저런 생각을 두런두런 적어 놓는다.


편리하다는 것은 신경쓰이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 아닐까? 편의점은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이 아주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끼니도 간단히 때울수가 있고 그야말로 편리한 곳이다. 근데 그 편한 곳이 불편하다?나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하였다.


책을 읽다보니 옛날 큰누나가 하던 가게, 원성 상회, 원성 슈퍼가 생각났다. 시내 예천역 앞에 있었던 가게였었는데, 고1 방학때 독서실에서 빡공하면서 누나 집에서 점심도 먹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누나가 자리를 비울 때 아주 가끔 가게를 본 적이 있는데, 물건을 찾느라 한참 헤맸던 기억도 났다. 불편한 가게였다.


편의점 염사장이 지갑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지갑을 주워주는 독고의 사연과 그 독톡한 캐릭터에 빠지고 말았다.


편의점 야간 알바인 독고는 손님들을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고 손님들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간섭한다. 싫은 소리도 한다. 손님들은 처음에  참 불편하고 삶에 끼어드는 독고가 불편하다. 독고의 간섭에 동시에 떠오른 단어들이 오지랖, 꼰대같은 낱말들이었다.  독고의 관심이 불편한 손님들은 오지랖이나 꼰대로 느껴질 수 있다.


오지랖은 나의 일에 쓸데없이 관여한다는 뜻이다. 나도 오지랖이 넓은 편인데 내 경우에 비추어 좋게 해석해보면, 상대방을 돕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다. 물론 내가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크기는  하다. 꼰대도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어 보인다. 너무 일방적이고  권의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간섭, 오지랖, 꼰대는  타인에게 관심이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어느때부터 자신의 삶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한다. 뉴스에도 가끔 나온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아 바른 소리하던 어른들을 폭행했다는 기사를 포털 뉴스에서 가끔 접할때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을, 남을 뭐라 할 것 없이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한테도 낯선 사람이 뭐라고 하면 싫어할 것 같다. 싫어하는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교사이지만 요즘은 남의 반 아이들 생활지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심할 경우 해당 학부모가 왜 담임도 아닌데, 참견이냐고. 예전에는 담임이 아니고를 떠나서 모든 교사들이 학교내 아이들을 함께 생활지도를 했는데, 이제는 어렵다. 예전에 학교내에서 중학생들이 들어와서 위험한 장난들을 하기에 한참을 주저하다가 겨우 다가가서 입을 뗐는데, 아는 체를 하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이어서 좋게 마무리 했는데 속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편의점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편의점 알바 학생들, 삶이 힘겨운 우리의 이웃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난 유독 부모와 자식 관계에 눈길이 갔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 한다. 점주와 그의 아들, 오점장과 그의 아들

"아들 말을 먼저......들어보세요. 지금 보니까 아들이 마, 말을 안 듣는다고만 하는데......선숙 씨도 아들 말을......안 듣는 거 같아요."(106쪽)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독고 씨가 들어주셔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쪽)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는데, 나도 아들말 들어주는 게 참 힘들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들은 열심히 자기 입장에서 얘기하는 데, 나는 내 입장에서 아들의 말을 해석하는 것 같다. 말은 듣는데, 아들의 마음은 읽지 못한다. 내 마음만 본다. 아들의 마음은 보지 않고.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가족한테도.....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될 겁니다."( 251쪽)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막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가족간에도 예의와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아내도 나에게 가끔 이야기 한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해주는데, 집에서는 왜 그러냐고. 밖에서도 잘 하고 안에서도 잘해야겠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253쪽)

독고의 간섭이 싫지 않은 것은 간섭은 또다른 관심의 형태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음에서 시작된다.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에게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관심은 좋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가 퇴색된 이 시대에  우리에겐 서로의 관심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 불편한 관심을 끊고 편의를 추구하는 편의점에서 불편하게  하는 독고씨가 이 시대 편리함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짠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나도 누군가의 간섭과  관심이 싫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의 괸심과 사랑이 절실할 때도 있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 투닥거리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살아있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소통과 관계가 소원했던 학교도 갈등이 폭발했다. 얼마전 3년만에 처음으로 전체 회식을 했는데, 그 간의 쌓였던 감정들을 술로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어 좋았다.  술을 매개로 하기가 쑥스러웠던 서로의 얘기를 나누고 들어주며 소통하고 소원했던 관계를 조금은 회복한 것 같다. 친목회장으로 준비하기가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동료들의 얘기로 시끌벅쩍한 식당에서 모처럼 삶의  온기가 느껴졌다.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관계와 소통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애정어린 관심은 서로의 삶을 행복하게 하지 않을까? 내가 독고에게, 근배에게 푹 빠졌던 이유는 나에게 부족했던 애정어린 관심을, 내가 막연하게 동경했던    따뜻한 관심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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