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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빨래

by 송호찬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올까요 그래도 상관은없어요 괜찮아요


블라인드 사이로 침침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방안.

블라인드 밑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남자는 눈빛이 잠깐 흔들리더니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방밖으로 걸어나간다.

잠시 멈춰 거실창을 본다. 무거운 구름들로 가득찬 하늘이다. 그래도 그는 처음 걸어나갔던 템포 그대로 세탁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지 몰라요


평소라면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렸겠지만 남자는 괜히 세탁물을 뒤적여 흰빨래를 따로 빼내고 있다.

잠시 멈춰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쉰다.


그게 참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할까요 어떻게해야만할까요


한 두 방울씩 베란다 난간에 맞아 빗방울이 튕겨져나간다.

고요한 거실에걸린 시계 소리가 마치 빗소리같이 툭툭거린다.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앉아있던 남자는 오른쪽에 따로 빼낸 흰빨래를 가지고 일어난다.


그대가 날 떠난건지 아님 내가 그댈 떠난건지 일부러 기억을 흔들어 뒤섞어도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빨래. 남자는 세탁기 앞에 앉아있다.

시선은 돌아가는 세탁기를 향하고 있다. *돌아가는 빨래를 보며 잠시의 평화를 얻는다.


그새 또 앙금이 가라앉듯 다시금 선명해져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까했는데


세탁기는 한쪽으로 돌다 잠깐 멈추어 반대로 돈다. 비누 거품이 가라앉는것이 보인다.

반복되던 세탁기의 물결은 잠시 멈추고 그 사이 무표정한 얼굴에는 작은 물결이 인다.


그게 참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할까요 어떻게해야만할까요


회색 바지 위로 참아왔던 눈물이 떨어지며 얼룩을 만든다.

팔과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지만 터져나오는 눈물은 닦이지 않는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장대비가 되고 그처럼 슬픔 또한 거세게 몰아친다.


뒤집혀버린 마음이 사랑을 쏟아내도록 그래서 아무것도 남김없이 비워내도록


오열하던 남자는 일어나 빠른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간다.

서랍을 꺼내 그 안에 들어있던 편지들을 쓰레기 봉투에 부어버린다.

여러 기억들이 깜빡거리며 떠오른다.


난 이를 앙다물고 버텨야 했죠 하지만 여태 내 가슴속엔


책상위의 같이 찍은사진을 올려놓던 때, 그리고 그 사진을 버리고 있는 지금과 같이 관련된 물건에 관한 과거 현재가 겹쳐보여진다.


그게 참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수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마지막으로 손에 낀 반지를 빼려다 그대로 그 손을 부여잡고 흐느낀다. 그대로 주저앉는 모습을 비춰주고 페이드 아웃된다.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올까요


처음과 같은 구도로 다시 페이드 인 된다. 조금 더 초췌해진 모습의 남자. 블라인드 사이로 침침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방안.

블라인드 밑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남자는 눈빛이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방밖으로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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