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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n 20. 2022

정신과에 다닌다는 안전장치

복직 준비를 하는 여름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오늘은 복직 관련 서류들을 제출했다. 아직도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고, 어느 부서로 돌아가게 될지도 확실치는 않다. 그저 초조한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무척 부럽겠지... 휴직 기간 동안을 되짚어 보면 물론 일할 때보다는 몸과 마음이 편했지만, 밤마다 밀려드는 깊은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불안은 딱히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인데, 상실에 대한 실존적 불안인 듯도 하고, 맞닥뜨려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들에 대한 불안인 것 같기도 하다.


 휴직을 통해 발견하게 된 미미하게 좋은 점 하나는 정신과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웃긴 얘기긴 한데,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이 힘들었다. 종종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평일에는 직장에 가야 하니까 갈 시간이 없었고, 토요일에는 이 좋은 휴일에 병원에 가기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주말이 되면 기분이 좋아져서 병원에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 그것도 다 좋았던 때의 이야기라, 이후에는 일주일 내내 근무를 했기 때문에 도저히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결국은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시기에, 몸도 마음도 더 이상 무엇도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직장에서 탈주하고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되니 스스로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정신과에 간다는 것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기 쉬워졌던 것 같다. 


 나는 평소에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특히 남일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아무리 슬픈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주변인이 힘들어해도 눈물이 막 나지는 않는다. 내가 우는 경우는 가끔 내 처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너무 울컥하는 어떤 문장에 꽂히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내면에 충분히 몰입할 시간이 필요한데, 몇년 전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만한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휴직을 계기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싶어 놀랍기까지 했다.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에서도 눈물 버튼이 눌렸고 눈물 콧물이 퐁퐁 솟아났다. 상담을 한번 마치고 나면 한 장 두장 뽑아서 눈물을 닦은 휴지들이 한 주먹으로 쥐기 어려울 만큼 큼직한 뭉치가 되어 있었다. 복직을 하려면 이제는 업무가 가능하다는 진단서가 필요한데,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인 상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더 이상 쉬었다가는 사회생활과 업무에 대한 감을 모조리 잃을 것 같은 불안감과, 복직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을 복직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조금 더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안전장치로, 나는 복직 이후로도 꾸준히 1~2주에 한 번씩은 정신과에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우나에 가서 묵은 땀을 빼듯 정신과라는 공간에서 나의 묵은 눈물들을 빼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한 달에 두세 번 남짓한 그 시간들이 나의 한 달을 버티게 해 줄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 보려고 한다. 바라는 게 있다면 복직 후에도 한 달에 두세 번의 그 시간... 병원에 갈 그 시간이 제발 있기를 바란다. 


 하루 종일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창밖으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너무도 거센 나머지 사방으로 하얗게 튀어 오르는 빗줄기들이 선명하게 눈에 보인다. 그렇게 쏟아내고 난 후에는 얼마간 마음 후련하기를. 가슴이 뻥 뚫릴 만큼 거센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여름을 그래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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