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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22. 2023

삶은 아픔으로 가득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만난 지 두 달이 약간 넘은 연인이 있다. 그가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직 나는 마냥 밝고 즐거운 사람일까? 나의 못난 모습과 우울과 어둠은 그에게 어떻게 비칠까? 


요 며칠 동안 죽음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유명인의 죽음, 직장 동기의 죽음, 동료의 가족의 죽음, 연인의 동료의 가족의 죽음. 죽고 싶은 마음에 시달려 왔던 날들의 기억도 줄줄이. 


연인과 함께 Q&A 노트를 쓰기로 했다. 페이지마다 질문이 있고 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해서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 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가볍게 술술 쓸만한 질문들도 많았는데 도무지 적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미루었던 질문이 '내가 가장 슬펐을 때'라는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쓰는 과정에서 마음이 꽤 우울해질 것은 뻔했다. 요즘의 나는 우울과 아픔을 못 본 척 모르는 척 무시하고 살고 있었던 걸까? 그것들이 불러일으킬 폭풍이 두려웠다. 


손가락에 원인 모를 종양이 솟아나고 수술할 병원을 알아보면서 마음이 더없이 무거워지고 불안해졌다. 전신마취를 하고 입원을 하고 손가락을 칼로 긋고 종양을 떼어내고 바늘로 꿰매고, 그것이 나은 후에는 한번 칼을 덴 자리가 과연 이전과 같을 수 있을까, 전신마취가 내 몸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등등에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또한 이 종양이 다른 곳에도 생겨난다면, 내가 암환자가 된다면.. 등등의 불안한 상상이 끝도 없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해 갔다. 


아픔에 대해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슬프면서 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픔이 너무나 싫기 때문이겠지, 그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어떠한 아픔도 고통도 느낄 수 없도록 도망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자문자답 Q&A 노트를 쓰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나를 꽤 자주 아프고 약하며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신체는 내 영혼의 족쇄가 되고, 약하고 아픈 신체 속에 갇혀 있는 느낌. 우울하고 아팠던 오랜 시간들. 단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픔은 함정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요즘의 나는 참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처럼 꽤 안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그저 단순하게 주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 긴 싸움 끝에, 우울과 아픔과 죽고 싶은 마음 끝에 어쩌면 그 시간들을 온전히 겪어낸 뒤에 얻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루어낸 나의 쉴 곳. 내가 일구어 낸 나의 쉴 곳. 


여전히 미래는 두렵고 불안하지만 결국은 내 마음 쉴 곳을 나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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