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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25. 2023

환자일기

나는 가운뎃손가락의 손톱 옆 살을 뜯는 버릇이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나의 가운뎃손가락 손톱이 자라나는 하얀 경계면이 손톱 뿌리까지 쭉 내려와 있을 정도로 변형이 일어난 상태였다. 가끔 네일 숍에 가면 감염이 될 수 있으니 살을 뜯지 말라고 몇 번씩 주의를 들었다. 물론 나는 그런 충고들을 여러 번 그냥 듣고 넘겼다.


마음이 초조해지면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손톱 옆 살을 잡아 뜯는다. 어제와 오늘도 브런치의 빈 화면에 무엇을 써넣을지 고민하며 그 부위를 지독하게 잡아 뜯다가, 문득 내 손가락에 갑자기 생겨난 정체 모를 종양이 이런 자극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 종양은 정확히 내가 살을 잡아 뜯는 그 부위로부터 두 마디 아래에, 바둑알만 한 크기로 형성되어 있었다.


손가락에 생겨나는 이러한 종양은 대부분 그 원인을 알기 어렵지만 어느 의사는 그 부위에 자극이 가해졌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 부위에 대한 직접적인 자극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어 번뿐인 치실을 손가락에 감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 종양의 생성 원인에 대한 가설을 세워 본다. 핸드폰, 마우스 등의 사용으로 피로해진 오른손 근육에 거센 치실이 감겨 오자 손가락은 더욱 약해진다. 그 와중에 피가 날 정도로 손톱 옆 살을 잡아 뜯었으며 그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 면역체계가 약해진 상태. 알 수 없는 유해 성분이나 병균 같은 것이 그 틈을 타 침입하고, 가장 약해져 있던 그곳에 변이 세포가 자라나 종양이 형성된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태어나 처음으로 대학병원에서 2박 3일의 입원생활과 함께 수술을 받은 경험은 강렬했다. 이 병은 재발이 잦고 종양이 주변 조직을 갉아먹으며 심한 경우 폐로 전이되면 치료가 어려워진다는 것과, 지켜봐야 알겠지만 수술한 오른손 손가락의 신경이나 근육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재활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 등등을 듣고서는 어느 정도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정교한 손가락 사용을 요구하는 음악이나 미술, 체육 분야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퇴원 후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로 나는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굳이 해야만 한다면 출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4주짜리 진단서를 받아 놓고 출근을 하는 것도 억울했다. 5년 차 직장인 나의 철칙은 쉴 수 있을 때 쉬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막상 절실히 쉼이 필요할 때에도 결코 쉽게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직장은 결코 내 모든 것이 아니고 1순위가 아니고 내가 헌신하며 사랑하고 마음 줄 곳이 아니었다. 


남은 휴식 기간에는 어떻게든 소설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는 속도가 변비와 같다면 진즉에 똥 못싸서 죽어버렸을 것 같은 나의 소설을 살리기 위해서... 그럼에도 내가 어떤 의무감이나 절실함, 기대감, 부담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놀이로서, 취미로서, 재미로써, 가볍고 산뜻하게, 편하게, 격식 없이, 맨발에 슬리퍼 끌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산책하는 여름 저녁처럼... 쓰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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