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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29. 2023

내가 유치해도 이해해 줘

나는 옛날 나이로 31살이다. 만 나이를 써보자면 서른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스물아홉이다. 서른이 되면 기분이 정말 이상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날이 다가왔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닌가. 나는 그때 이십 대의 마지막을 소설로 남기고 싶었고, 소설이랄 것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그해 상반기에 나는 시창작을 공부해 보려고 집 근처 대학의 문창과 야간대학원에 등록해서 1학기를 다녔고, 그 결과 난데없이 소설에 빠진 상태였다.) 내 인생 세 번째의 단편소설을 그렇게 썼다. 


 물론 그때 썼던 소설들은 소설이라 할 수도 없는 쓰레기... 그럼에도 한 시기를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로 갈무리하고 의미 부여하는 방식에 나는 홀라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아주 단순하고 강렬한 열정으로 나의 남은 인생 모두를 기꺼이 소설 쓰기에 헌신하고자 할 만큼.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직업 적성 검사 중 하나인 홀랜드의 6가지 직업 흥미 유형을 보면 관습형의 정반대 편에 있는 유형이 예술형이다. 서로 상충되는 것이기에 반대 유형이 함께 높은 점수를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함께 뜨곤 했다. 실제로 나는 관습형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면서 예술형 취미를 나의 나머지 인생 절반에 투자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이렇게 살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과거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를 블로그를 통해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 내 인생을 찾아보기 쉽게 기록하고 보관해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정말이지 돈이라도 내야 한다.


최근 나는 애인과 함께 스타듀밸리에서 협동농장을 하나 만들었다. 나는 모바일 스타듀밸리 광인이었고 애인은 pc버전 유저였다. 모바일은 멀티가 불가능해서 내가 pc버전을 구입했다. 작은 폰 화면으로 보던 때에는 알지 못했던 드넓은 확장감... 나는 오랜만에 또다시 스듀 광인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스타듀밸리는 게임을 시작할 때 500 골드를 가지고 시작한다. 우리는 농장을 대충 정리하고 파스닙을 심은 후 마을 광장에 있는 스타드롭 주점에 갔다. 나는 기분이라도 내려고 400 골드짜리 맥주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 남은 돈은 100 골드였다. 애인에게도 남은 돈은 100 골드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돈을 함께 벌어서 함께 쓰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거 공산주의였어! 애인이 채팅창에서 외쳤다.


스타듀밸리는 1.5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뒤로 캐릭터가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면서 좀 더 아기자기한 상황 연출(소꿉놀이)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농장 앞마당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앉아 모닥불을 보며 불멍을 했다. 마을 주점에 앉아 소개팅 상황극을 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밤이 늦은 것을 알고 뒤늦게 집을 향해 뛰어갔지만 결국 길거리에서 나란히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방에 앉아 노트북으로 게임을(게임으로 하는 소꿉놀이를...) 하며 시시덕거리고 놀다가 문득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유치하게 느껴졌다.(하지만.. 세미 장거리-편도 1시간-로 평일에는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든 애인과 사이버 세상에서라도 만나서 노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30대가 되어서도 이러고 논다는 걸 초등학생들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열세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너는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라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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