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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ug 01. 2023

핏덩이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3000000&bid=0003&act=view&ord=B&list_no=96962&nPage=1&c_page=


매달 1일이면 문장 웹진을 살핀다. 오늘 읽은 소설은 이것이었다. 이런 걸 읽고 나면 어쩐지 산다는 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생리가 일주일 남았다. 귀신같이 죽고 싶어졌다. 몸이 피로해지고 체력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고 실제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미가 없어지고 흥미도 떨어지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고 배도 안 고프고 그렇다고 졸리지도 않을 때.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나를 대신해 다른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 이만 죽고 싶어 진다.

속이 터질 것만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꼴을 지켜보고 있어야 할 때. 끝도 없이 욕을 퍼붓고 싶어 진다. 아빠는 오랫동안 그런 존재였다. 전두엽이 없는 것 같다거나. 아니면 저 인간의 변연계를 잘라내 버리고 싶다거나 하는. 얌전해지는 약이 있다면 먹이고 싶어지는. 그런 잔인하리만치 싸늘한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죽고 싶어 진다.

  참을 수 없이 제 몸을 긁어대며 피 흘리는 개를 아빠가 돌본다. 아니 때린다. 화를 내고 성난 고함을 지른다. 긁지 말라는 인간의 말을 개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도. 개는 영문도 모르는 채 맞고만 있다. 달려들어 문다면 얼마나 더 맞게 될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뇌혈관의 일부가 파괴된 아빠는 그럴 만한 명분을 얻었다. 쉴 새 없이 자신의 몸을 긁어 대는 개에게 끊임없이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고 때리는. 병원의 어린 여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평생 딸년이라든가 큰 년 작은 년 말고는 나를 부르는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했던. 나이보다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저 혐오스러운 노인이 나의 아빠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릴 때마다 나는 죽고 싶어 진다. 저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내가 얼마나 많이 슬퍼하고 눈물 흘릴지 알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삶이 지독하다. 

아... 그래서 나는 살아가는 동안 소설을 쓸 수밖에는 없다. 목구멍 아래로부터 울컥 올라오는 핏덩이. 그것이 나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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