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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Sep 15. 2024

구월의 메일함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 쓰기, 같은 일처럼 오글거리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구월은 미래의 자신 또한 과거의 나에게로 편지 따위는 보내지 않을 줄로 알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구월은 미래에서 왔다는 편지는 단 한 통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의 자신이 정말로 평생 자신에게 편지 따위는 보내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남들은 미래의 자신에게서 종종 편지를 받았다. 미래에서 온 메일함이 발견된 후로 이것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이 오갔다. 죽음에 연관된 정보는 전송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며 편지를 보내는 횟수에도 제한이 있는지 편지는 아주 간혹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확한 규칙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미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니까.


이상하게도 미래에서 보내오는 편지들은 거짓말쟁이들이 보낸 편지인지, (본인이 자기 자신에게만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누군가는 미래의 내가 알려준 로또 번호 따위 맞지 않는다고 했고, 미래의 자신이 꼭 사라고 했던 주식은 오를 기미도 없이 곤두박질쳤다고,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으니 그냥 킵해두고 있는다고 했다. 그밖에는 수능 시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놀랍도록 그런 정보들이 실제로 현재의 내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순 사기꾼 아냐? 구월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는 보안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개인정보가 털렸는지, 스팸메일이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가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고, 사기꾼이 보낸 것 같은 편지들. 심한 경우에는 그런 것들이 수천 통씩 쌓여 있다고. 그러나 가끔은 미래의 내가 정말로 중요한 소식을 보냈을까 봐 그런 쓰레기 더미들을 한참 골라내고 있는다고 했다. 누구였느냐면 바로 유진이.


구월과 유진은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됐다. 유진은 안쓰러울 만큼 자주 메일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진은 하루종일 메일함을 확인하고, 일을 하다가도 확인하고, 집에 와서는 아예 눈이 빠져라 메일함을 뒤적이며 술을 마신다고 했다. 잠들 때까지. 그리고 다음 날에는 일어나서 또 메일함을 확인하면서 출근을 하고... 

"가장 처음으로 받아 본 편지 기억나요?"

없는데,라는 구월의 대답에 유진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내가 이 편지들 때문에 시력이 많이 떨어졌거든. 근데 기다려 봐요. 그러다가 늦게 터져서 답도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첫 편지에는 정말 엄청난 사실이 편지에 담겨 오는 경우도 있다고들 했지만 정말 맥 빠지게 왜 썼는지 모를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한다는데. 유진의 경우엔 조금 놀라운 내용이긴 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뭐였는데?"

"너는 공무원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어요."

"뭐, 좋은 거 아냐? 너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3년 동안 중독자 모임에 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것보단 낫네."

"그럴 수도 있는데 그땐 제가 미대 입시 중이었거든요."

"미술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그런 거 하니?"


유진은 픽 웃으며 말했다.

"뭐 가끔 문화누리 카드 접수 신청 같은 거 처리하기도 해요."


유진과 이야기하다 보면 구월은 신기하게도 더 술이 당기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월은 신기하게도 진짜로 첫 편지를 받았다. 미래의 자신에게서 온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 이름 사실은 아빠네 가게 아르바이트생 이름에서 따온 거야.'

늘 듣던 대로 찬란한 가을 아침에 네가 태어나서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어쩌고 하는 이야기보다는 정직해서 좋네, 생각하고는 유진을 불러 술을 좀 마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다음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구월의 첫 편지 내용을 전해 들은 유진은 깔깔 웃었다. 

구월은 조금 기분이 상해서 물었다. 

"뭐 별 거 없던데. 넌 왜 그렇게 그 쓰레기 메일함을 열심히 뒤지는 거야?"

"언니는 정말 궁금하지 않아요?"

"뭐가?"

유진은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인생이 평생 그냥 이렇게만 살다가 끝나게 될지?"

"....."

"근데 아무리 기다려봐도 별 특별한 내용은 없더라고요. 저는 공무원이 된다는 그 말을 본 후로는 늘 미술에서는 한 발을 빼고 살았어요. 이게 내 전부는 아니겠구나, 하고. 입시를 마치고 미술을 전공한 4년 내내요. 그리고 이제는 뭐 두 발 두 손 다 떼게 됐지만..."


그날 밤 맥주를 한 캔 마시며 구월은 유진에게 편지를 썼다. 익명의 편지를,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가. 

'너는 술을 끊게 된다. 그리고 그림은 제법 잘 그리는 공무원이 될 것이다...'


*


그다음 모임에서도 다다음 모임에서도 유진에게는 별 말이 없었다. 낚싯줄을 던져놓고 기다리는 어부가 된 것처럼 유진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먼저 물어보기도 뭐해서 구월은 흘끔흘끔 유진의 눈치만 살폈다. 

유진은 늘 그렇듯 전과 같았고,

며칠 뒤 구월은 오랜만에 메일함을 살펴보다가 새로운 편지가 온 것을 발견했다.


'너도 술을 끊게 된다. 그리고 제법 괜찮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싱겁긴, 여전히 맥주를 홀짝이는 채로 구월은 다음 알코올중독자 모임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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