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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6. 2021

일요일의 끝에서

또 한 주를 앞두고 쓰는 일기.

루틴 어플을 설치해서 얼마간은 초록불을 열심히 달성했다. 점차 새로운 단계로 높아지는 등급이 눈에 보여서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손을 놓기 시작하면서 빨간 불이 연이어 들어오게 되자 취득했던 등급들이 순식간에 전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허무함에 오히려 더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어떤 날은 그런 루틴들 따위가 다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은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의 루틴들이 내 삶을 마법처럼 바꾸어줄 것 같아서 기대감에 빠지게 된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였다. 주말에 갑자기 호출 소식이 들렸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에 대한 기준 없는 삶. 내 이기심인지, 당연한 권리인지, 아니면 이타적인 행동인지 호구 잡히는 건지 분명히 구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회사를 생각하면 어쩔 때는 돈이 나오는 고마운 곳이고, 어쩔 때는 까마득하고 막막하며 불안하고 두려운 곳이다. 글을 쓰고 딴청을 피울 때 내 마음을 정돈할 수 있고 한눈을 팔 수 있고 딴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렴풋이 내가 계속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게 어떤 힘이나 무기나 약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쓰는 글이 내게 어떤 성취나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처럼 보일 때, 내가 쓰는 글이 너무 초라하고 의미 없어 보일 때, 내가 하고 있는 짓들이 다 쓸데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며 마음이 조급해진다. 게을러지고 도망 다니게 된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래 왔듯이, 결국은 무엇이라도 쓸 때 마음이 잠잠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도저히 어떤 것도 쓸 수 없을 때가 분명 있긴 하지만. 


토요일 오전에는 글을 썼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이제는 써야 할 때였다.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고 막막했지만 우선 끝까지는 가 보자, 끝까지 완성만 해 보자.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글을 조금 썼다. 책을 보고 유튜브도 봤다. 일찍 잠들었다. 일요일에는 잠이 많이 왔다. 늦게서야 일어났고, 오전 내내 잠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많이 온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잠이 쏟아졌다. 커피를 사러 나갔다 왔다.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려서 또 글을 썼다. 또 책을 보고 유튜브를 봤다. 하루가 금방 다 갔다. 내가 쓰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짓 같아도 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이 나올 때도 있다는 게 좋다. 뭐라도 쓰면 그날 하루가 완성되고 정리된 기분이 좋다. 그러니까 매일 뭐라도 꾸준히 쓸 수 있길. 


1월과 2월에는 지금 쓰는 것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작법 책을 끝까지 읽는 것, 읽으면서 시도 조금 써 보는 것이 목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브런치를 올리고, 블로그는 매일 쓰고 싶다. 겨울을 그렇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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