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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Feb 13. 2022

나의 문제 나의 주제

생각보다 그리 상황이 나쁘지 않다


 스터디카페에 왔다.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삼십 분이다. 

 아침에는 꿈을 많이 꿨다. 기분이 좋지 않은 꿈이었다. 빈 사물함을 찾아서 내 노트북을 넣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사물함을 다 차지해버려서 빈자리가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있었다. 결국은 동료가 필요 없는 책들을 쑤셔 넣어 둔 사물함 한 칸을 빌려 쓰기로 했다. 그 책들은 20년 정도 전에 펴낸 것 같은 초록색 표지로 되어 있었고(지금 생각해 보니 현대시작법 책인 것 같다), 어느 기관에서 직접 만들어서 펴낸 여러 권짜리 업무용 책자인 것 같았다. 버려도 될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못 버리고 쑤셔 넣어 둔 것 같았다. 그 사물함을 열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다. 사물함들의 비밀번호들이 적힌 문서가 노트북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노트북을 켜서 파일을 열었다. 그 사물함의 비밀번호는 암호 처리되어 문제를 풀어야 알 수 있었다. 분수들의 나눗셈 문제였다. 계산을 하기 위해 나와 동료는 계산기를 켰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잠겨버렸고 퍼즐을 풀어야 잠김이 풀린다는 안내가 나왔다. 빨리 풀지 않으면 또 자리를 뺏길지도 몰라 조급해졌다. 문제를 푼 동료가 비밀번호를 알려줬지만 적어 놓지 않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또 다른 꿈에는 서무님이 등장했다. 업무를 할 때 필요한 계산 공식 두 가지가 있었다. 공식 이야기가 나오자 서무님은 당연히 외우고 있다는 듯 종이에 그것들을 술술 써 내려갔다. 오, 대단하다. 나는 그 공식들 안 외우고 매번 찾아보면서 하는데... 그런 꿈이었다.(실제 업무는 당연히 공식으로 푸는 거 아님ㅎ)


 문제, 문제가 있고 나는 그 문제 해결에 뭔가 조금씩 모자라고 부족한 느낌을 주는 꿈들. 

 그리고 또 다른 꿈은, 학과 언니들이 웬 핑크색 아이돌 같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꿈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절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화려해 보였고... 그런 꿈이었다. 


 3일에 걸쳐 80매짜리 단편소설의 초고를 썼다. 완성한 날에는 물론 기분이 좋았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산다. 대학원에 다녔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퇴사하고 싶지만 정규직 자리를 버리기가 아까워 퇴사하지 못하고, 전공을 사랑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전공을 살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언니'가 등장해서 연주를 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듣고 있는 '관객'일뿐이다. 자신만의 뚜렷한 길을 걸어가는 '언니'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가도, 하지만 비정규직인 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연중에 드러난다. 스스로가 뚜렷하지 않고 애매하니, 남들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몰라 준다는 원망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썼다. 


 어제는 세미나가 있었다. 복학을 하려고 했지만 못 하게 되었고, 그게 절망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주 푹, 쉴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긴 했지만. 인생은 쉬려고 사는 게 아니다, 아직은 쉴 시간이 아니다. 그런 속마음이 울컥 올라오며 나를 몰아붙인다. 

 오랜만에 들어본 세미나는 여전했는데- 나는 화면도 마이크도 끄고 말 그대로 듣기만 했으니-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가까이에서 들어볼 수 있다는 즐거움, 하지만 가차 없이 날아다니는 비평들과 그런 것들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고 나의 의견을 쥐어 짜내느라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 


 부럽기도 했다. 나도 함께 작품 쓰면서 합평하는 동료들과 지도해 주실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듣고 있으면 내 작품에서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도 감이 온다. 수정을 해야 하는데. 막상 시작하기 두렵다. 혼자서 웹소설도 쓰는 중이다. 매일 두 편씩은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디어도 부실하고 재미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힘이 빠진다. 


 또 나의 원래 전공이었던 분야에서 성장해 나가는 옛 원우들을 보면 그 또한 부러워진다. 나는 여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체된 채로 부러워만 하고, 그들은 천천히 그들만의 길을 걸어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나는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망갈 궁리만 할 뿐이다. 승진 따위는 포기한 지 오래인 사람처럼, 완전히 직장 부적응자처럼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들은 차근차근 뭔가를 쌓아 간다.

 요즘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걸음마 단계인데. 내가 좋아하는 곡을 멋지게 연주해서 내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한편으로 나는 절대로 저렇게는 연주하지 못할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나는 지금의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나만의 글을 쓰고 그 글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고 싶다. 그런 목표를 생각해 보면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긴 하다. 남들을 부러워하고 있을 시간에 나를 봐야지, 내 앞의 책상을 봐야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지. 다시 힘을 내야지.

 다시 아침에 꾼 꿈으로 돌아가 볼까. 꿈에서 나만의 사물함을 찾지는 못했지만 동료가 가진 사물함의 공간을 나눠 받기로 했고, 어쨌든 동료의 도움으로 사물함 문을 열어 보긴 했다. 꿈 속의 서무님처럼 공식을 다 외우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그걸 찾아보면서 일을 하면 일이 풀리긴 한다. 어쨌든 나는 지금 '시간'이 있다. 생각보다 그리 상황이 나쁘지 않다,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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