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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Feb 20. 2022

스터디 카페에서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정리하고 다짐하는 일기.

 아주 작은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빛이 머무는 책상, 빛이 키보드 위에 몇 조각 떨어져 있다. 블라인드를 보면 정교하다는 생각이 든다. 줄을 잡아당겨 블라인드의 각도를 조절한다. 건반처럼 줄줄이 늘어선 블라인드 조각들이 일제히 각도를 튼다. 


 오후의 스터디 카페. 오늘은 커피 대신 티백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셨다. 커피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른이 되고 건강을 자주 생각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간당간당했다. 무시하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어느 날은 덜컥 겁이 난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거나, 흉부에 통증이 있거나, 다리가 저리거나, 무릎이 쑤시거나, 눈이 아프거나, 시야가 흐려지거나, 하는 식으로. 몸은 조금씩 삐걱거린다. 


 강한 향이 나는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편안한 차는 보리차, 옥수수수염차. 맹물은 왜 마시기 싫은지 모르겠다. 금방 싫증이 나고 금방 질리는 편이다. 새로운 것을 맛보고 싶다. 오늘 고른 티백은 그린필드의 블랙티였다. 홍차의 강한 향을 생각하면 내 취향이 아닐 것 같았다. 맨질맨질한 껍질에는 보라색 꽃이 그려져 있었다. 의외로 차는 향긋했다. 달콤한 포도 향이 희미하게 났다. 쓴 맛은 나지 않았다. 텀블러에 담긴 채 오래 놔두어도 맛이 진해지지 않아서 좋았다. 


 집 근처에 스터디 카페 몇 곳이 있다. 그중 가장 편안하게 이용하는 한 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사물함을 사서 텀블러와 이어폰, 핸드크림, 충전기, 책과 노트와 볼펜 등을 넣어두었다. 200시간권을 결제했다. 생산을 하려면 생산을 하는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 집은 영 생산을 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집에서는 책이라도 읽으려고 한다. 그마저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기 딱 좋다. 과자를 먹으면서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틀어 놓거나, 개인 오디오 방송을 듣거나 오디오북을 듣거나. 


 내 인생은 어디로 가나, 불안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곳은 잠시 들른 대피소, 임시방편, 잠깐 머무르는 곳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마음 놓고 살 수 있을까. 뭘 하든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밤이 되면 불안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 눈앞에 비치는 것은 불안이다. 들려오는 소리가 아무것도 없을 때, 허공을 메우는 것은 불안이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 저절로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불안이다. 아무런 연결 없는 뇌세포들의 휴지 상태에서, 자동으로 발화하는 가장 익숙한 길은 불안이다. 가장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불안과 밤마다 싸운다. 


 조용하고 아무런 말이 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가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은 작은 종이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다. 시험 성적이 좋다면 나름 눈에 띄는 것에 성공한 셈이다. 눈에 띄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는 자신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묘사가 필요하다. 내 형체를 묘사하고 내 마음을 기록한다. 그렇게 하면 실존하는 사람이 된다. 


 왜 마음이 아플까


 규칙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단정하게 정돈된 일상이 무너지면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을 안다. 규칙적으로 살다 보면 어느 날은 일상이 내 등을 밀어주겠지. 무엇보다 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초조함이 가득하다. 초침 소리처럼 째깍이는, 초조함, 조급함, 초조함, 조급함.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불 정리부터 성공한다더라, 하는 말을 처음에는 무시했다. 시간이 좀 생겼으니, 이불 정리라도 해 볼까. 그래서 아침 이불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 다음 간단하게 손에 집히는 걸 먹고, 나갈 준비를 한다. 나갈 준비는 빠르게 해야 한다. 늦어지면 주저앉고 싶어 지니까. 아침에는 스터디 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그냥 카페에 가기도 한다. 어디든 그날 끌리는 곳으로. 그리고 글을 쓴다. 


 매일 다잡는다. 매일, 시를 쓰자, 동시를 쓰자, 소설을 쓰자, 웹소설을 쓰자, 단편을 쓰자, 장편을 쓰자, 동화를 쓰자, 다잡는다. 그리고 쓴다. 조금씩,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다시 초조해진다. 읽는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본다. 작법서를 본다. 그리고 다시 쓴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내가 쓴 건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조금 생각한다, 더 많이, 더 빨리 써야 한다고, 조급해진다. 매일이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좋은 결정이었다. 지금이 딱 피아노를 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쉬운 것들부터, 차근차근. 걸음마를 시작하는 기린처럼. 내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걷는 게 즐겁다. 건반을 두드리는 게 즐겁다.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게 즐겁다.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흥얼거리기 좋은 곡들을 내 손끝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다. 내가 우울할 때 무작정 신나는 곡이 들려올 때는 거부감이 드는 반면, 그 곡을 내 손끝으로 연주할 때는 그 곡이 내 기분까지 끌어올려준다. 내 손끝으로 만든 경쾌함은 분명 내게 속한 경쾌함이라고.

 피아노는 가볍고 단단하고 투명하고 산뜻하다. 취미로서의 피아노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더 많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요 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초조하지 않고 즐거움만을 준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실제로도 딱 한 달만 다니고 그만 둘 거라는 생각에, 더 즐겁다. 끝이 있다는 거, 그만둘 수 있다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데. 분명 좋아하면서도 끝을 바라는 건 어떤 마음인가. 그런 마음도 있다. 


 브이로그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 또한 지금 와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일이다.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쭉 이어 가고 싶다. 나는 분명 생산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을 즐기고 얼마만큼은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별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나눈다는 게, 그것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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