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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Feb 27. 2022

커피 이야기

그런데 커피를 참는


 커피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는 거의 매일 스터디카페에 간다. 지금도 스터디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매일 글을 쓰려고 하고 거의 매일 쓰고 있다. 매일 웹소설을 한 편씩 써서 올린다. 처음 써 보는 거니까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그냥 매일 쓰면 성공이다, 그런 생각으로 쓰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를 막 넘어섰다. 일요일은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기로 한 날이다. 그냥 나와의 약속이고 규칙인데, 안 지키면 엄청나게 찝찝해지므로 뭐라도 써서 올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오늘은 특히 더 글 쓰기가 어색하다. 왜인지는... 아마도... 커피가 없어서일까?


 나는 문제의 원인을 커피로 돌려버리기로 했다. 커피는 몸에 안 좋으니까, 대신 차를 마시자. 차. 차. 스터디 카페에 있는 캐모마일 티백 한 봉지를 뜯어 따뜻한 물에 올렸다. 풀 맛. 차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비린 풀 맛을 참고 있기 힘들어서 결국 갖다 버렸다. 머리가 어쩐지 답답해지는 건 이곳 공기가 탁해서일까? 역시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일까? 커피 없이 주절주절 손가락만 움직여서 써 놓은 글을 보니 당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서툰 외국어로 뭐라도 말해 보려고 꾸역꾸역 쏟아 놓은 것만 같다. 읽어 보고 싶지도 고치고 싶지도 않아서 죄다 지워 버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 범인은 커피라고 단정 지으며.


 역시 커피를 사러 가야 할까? 스터디 카페에도 커피 머신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가 나오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달달한 시럽이 들어간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다. 그 커피 한 잔이면 브런치 글이든 웹소설이든 따로 쓰려고 하는 장편소설이든 블로그 글이든 술술 다 써서 만족스럽고 생산성 높은 하루를 완결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희망의 풍선을 바늘로 콕콕 쑤셔서 김을 쑥 빼 버린다. 희망의 풍선은 힘을 잃고 쪼그라든다. 난 지금 커피를 담아 올 텀블러도 없어.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받아 올 수는 없어. 커피를 마셔서 내 건강을 해칠 수는 없어. 커피를 사는 데 돈을 쓸 수는 없어. 


 이럴 수가... 


 나는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 일찍 맛있는 커피를 사서 스터디카페에 갈 생각을 하며 잠들었단 말이다. 너는 매일 그런 식이지. 커피를 먹고 싶은 내가 커피를 참으려는 내게 말한다. 마치 맛있는 커피를 사줄 것처럼 정말 그럴 것처럼 나를 유혹해서 밖으로 불러내 놓고 정작 카페 간판 앞에서는 도망간다. 내가 카페 간판을 얼마나 간절히 쳐다보는지 카페 알바생이 무안할 만큼 카페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걸 다 알면서도. 발 빠르게 스터디 카페로 올라가 버리고 말지. 그렇게 빈 손으로 스터디 카페에 올라오면 커피를 기대했던 내 좌절감은 네 글을 망쳐버릴 거라고 협박하지. 아냐. 커피 없어도 잘 썼어.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 두고 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이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얼마나 마법처럼 황홀하게 해 주는지 나는 자꾸만 커피 커피 판타지를 들려주며 내 머릿속을 뱅뱅 맴돈다. 듣다 보면 정말 그럴 것만 같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이면 왠지 내 오후가 특별해질 것만 같아. 상쾌하고 기분 좋고 여유롭고 즐겁게 생산성을 폭발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아! 

 

 내가 원래 오늘 쓰려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어제 인문 매거진을 선물 받았고 그 기쁨에 대해서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선물이 주는 활기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죄다 커피에 밀려나 지워져 버렸다. 다음 주에 쓰지 뭐. 다음 주에는 쓸 수 있겠어? 기억할 수 있겠어? 그럼 조금만 써 놓고 글을 마쳐야지. 


 며칠 전 나는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인문 매거진 어쩌고라는 곳에서 온 메일이었다. 내가 예전 언젠가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어서, 보답으로 응답이 실린 잡지를 보내주시겠다는 내용이었다. 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제 우체국 택배가 도착했다. 내 응답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찾아 보았다. 그런데 도통 내 응답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 이름을 실명으로 했던가, 익명으로 했던가, 그런 것도 물론 기억나지 않았다. 내 응답이 너무 짧고 단순하고 평범한 내용이라서 기억나지 않는 걸까?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어쩐지 입에 착 감기는 이름을 발견했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런 이름을 쓸 것 같은 이름. 아, 이거 내가 쓴 가명이구나. 그제야 내가 쓴 응답들을 전부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솔직하고, 괴팍하고, 신선하고, 재밌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게 보내는 비밀 편지 같아서 어쩐지 찡하고. 내가 쓴 글자들이 종이 어딘가에 인쇄되어 한 권의 책이 되어 있다는 게 즐겁고. 


 나는 저자들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내가 추첨되는 장면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상자에 종이 조각들을 집어넣고 뽑기로 하는 추첨이었다. 아, 저렇게 많은 종이 조각 중에서 내 이름이 마지막에 뽑혀 나왔다. 그것도 어쩌면 조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게 한마디 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봐. 커피 없어도 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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