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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r 06. 2022

쓸 때마다 생각하는 것

쓰는 생활

 마감 생활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생계가 달린 일이라면 마감 생활이라는 단어는 좀 더 진지한 무게감으로 다가왔겠지? 지금 나의 마감은 내게 어떤 돈을 벌어다 주는 일도 아니고, 요청하거나 기다리거나 협박하는 어떤 사람도 없고,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은 일, 루틴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을 뱅뱅 맴돌며 우리의 생활을 마법처럼 바꿔줄 것만 같은 단어, 루틴. 루틴으로서의 마감 생활.


 일요일에는 브런치 글을 쓰기로 했고, 그래서 오늘도 글 쓰러 나왔다. 나에게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 언제 또 주어질지 모르는 이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쓰기로 마음먹었다. 많이 쓰다 보면 그중 하나는 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아니면 글 쓰는 실력이라도 늘겠지, 글 쓰는 습관이라도 들겠지, 글 쓰는 속도라도 붙겠지, 하면서.


 얼렁뚱땅 쓰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계획이라곤 마감 날짜뿐인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후딱 쓰고 끝내는 것 같아서. 마감이 급한 과제를 대충 쳐내듯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빈칸에 뭔가 써 내려가는 건 언제나 그런 마음이겠지? 그런데, 도대체 뭘 쓸 수나 있을까, 싶다가도 막상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며 써 내려가다 보면 뭔가 툭 나오는 순간이 즐겁다. 뭐가 나올지 모르고 열어 보는 선물상자처럼. 언제든 얼마든 지울 수 있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쯤은 가볍게 마음먹고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으로 데려다주는 게 글쓰기의 재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웹소설 공모전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매일 그런 생각들의 반복이다. 매일 4천 자의 분량을 채워 올리면서 오늘은 할 수 있을까? 오늘은 할 수 있을까? 의 의문을 조금씩 확신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확신을 연습하고 확신을 습관화한다. 내가 쓰는 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 같아, 라는 의심들을 그래도 쓰다 보면 개중 하나쯤은 재밌더라, 내가 생각도 못한 결과들이 나타날 때도 있더라, 라는 경험을 쌓아 가는 과정으로 만들어 간다. 백지 앞에서 부담이나 공포나 회피 같은 것들이 몰려오기 전에 그저 익숙한 습관과 습관의 확신으로 잠자코 써 나가는 연습. 그런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쓰는 것뿐인 것처럼 쓰고 있다. 언제나 더 나은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이전의 경험들이 도움이 된다. 그런 곳에서도 버텼는데, 이거라고 못 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을 하던 일상, 평일에도 주말에도 일주일에 6일에서 7일씩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또 쉬다가도 갑자기 불려 나가 일하던 기억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 고통에 비하면 이쯤은 귀여운 수준이지, 고통 축에도 못 끼지, 오히려 즐거움이지, 글 쓰는 것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미래를 기대하게 하니까. 쉬고 싶은 날이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얼마든지 다시 나를 일으켜 달려 나가게 할 수 있다. 귀찮다고 출근 안 했니? 아프다고 출근 안 했니? 기분 나쁘다고 출근 안 했니? 잠 못 잤다고 출근 안 했니? 물음 끝에 몸을 일으키고 글 쓰러 갈 수 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글 쓰는 것만큼 쉬운 건 없으니까. 불가능할 만큼 많이 써 보고 싶다. 지금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매일 웹소설을 쓰고, 장편 소설을 매일 5천 자씩 쓰고, 시와 동시를 쓰고, 단편을 쓰고, 작법서를 읽고, 남의 글을 읽고, 배우고, 합평에 참여하고, 클래스를 듣고.


 이건 분명히 된다는 확신 앞에서는 안 될 일이 없었으니까. 경험의 축적은 그만큼 확고한 확신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쓰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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