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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24. 2022

한번 더 하자고 다짐하는 일기

매번 똑같은 이야기지만

 코로나 확진 안내 문자가 왔다. 오늘 아침 아홉 시 사십 분쯤. 그건 꽤 놀라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최근 코로나 검사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진 안내 문자에 적힌 이름은 물론 내 이름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긍정, 밝음, 웃음, 그런 종류의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핸드폰 번호가 잘못 입력된 것 같았다. 이런 문자를 다 받아 보다니. 신기하면서도 이건 무슨 징조인가, 괜히 생각해보게 되고. 문자 발신 번호를 보니 한때 내가 살던 곳의 지역번호여서 더 반가웠다. 애꿎은 환자분이 확진 안내를 받지 못하면 안 되니까, 문자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바쁘니까 통화가 어렵겠지 싶었지만 신호음이 열 번 정도 간 후에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익숙하지, 코로나 관련 실무를 맡은 보건소 직원들은 대부분 젊은 여자니까. 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는 밝았다. 생기를 잃지 않은 목소리였다. 다행이면서도 신기한 부분. 견딜만한 걸까? 다 죽어가던 내 목소리를 떠올린다. 내가 잘못된 것이었는지. 내가 많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나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이며 그 사람이 아니라고, 전화번호가 잘못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오후에는 다른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도 다른 담당자겠지, 나는 아침에도 통화했었다고,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퇴근 시간(일요일이지만...)이 가까워지고서는 재택치료팀에서 문자가 왔다(지금은 퇴근했을까?). 그 팀에서는 아직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귀찮아서 전화를 걸진 않았는데... 어쨌든 세 번이나 연락을 받고 나니까 만약 이게 소설 속 이야기였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만약 내가 그런 이야기를 썼다면. 난 여기에 무슨 의미를 부여했을까.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잘못 가 닿은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결국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게다가 짜 맞추기 좋게 그 이름도 긍정, 밝음, 웃음이다.)


 요즘 나는 조금쯤 포기한 사람처럼 늘어져 있었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음이 잡히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잘만 흘러서 벌써 4월도 끝나려고 하고, 봄 나무들은 그새 착실히 잎을 키워서 거리에는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나는...... 요즘 나는 자꾸만 내가 의미 없는 일에 쓸데없이 시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말 그대로 삽질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면 이런 거 할 시간에... 다른... 뭘? 예를 들면 집안일이라든가... 청소라도 더 하거나...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갔다 오거나... 마음의 짐이라도 덜 겸 매일 집안 청소라도 착실히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저녁마다 반찬이라도 만들어 보거나... 하는 그렇게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나는 그런 일상적인 일들을 정말 싫어하는 편이다. 요리를 한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고장 난 것을 수리 맡겨야 한다거나 부족한 물건을 사서 채워 넣어야 한다거나 하는... 해결해야 하는 집안의 각종 문제들... 그런 것들을 모르는 척 무시하고 미뤄두다가 오히려 더 마음만 찝찝해지니, 그런 것들에 인내심을 갖고 다가가야지. 너무 먼 미래까지 한꺼번에 살려고 하지는 말아야지, 그냥 하루씩, 하루씩만, 오늘 하루씩만 차근히 살아야지.


 직장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조금씩 직장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있다. 나는 아마 직장을 영 떠나지는 못하겠지. 붙어 있을 땐 그렇게 지긋지긋했는데 막상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힘들었던 건 그냥 인내심 없고 애 같아서, 였을까, 너무 바라는 게 많고 환상이 많아서였을까, 다들 그렇게 사는 걸 나만 못 참고 징징거렸던 걸까, 다들 그렇게 사는 건데 나만 그걸 못 견뎠던 걸까, 배부른 소리, 재수 없는 사람의 우는 소리였을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건 맞지만, 유치하고 재수 없고 징징거리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입 꾹 다물고 사는 게 맞을까. 당연히 아니겠지, 나를 숨기고 감추고 입을 다물고 쥐 죽은 듯이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겠지. 나는 그걸 다 말로 하지 못해서 말로 할 수 없어서 글로 쓰자고 결심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내가 글을 지독하게 못쓴다고 해서 내가 멍청하고 생각이 짧고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글마저 쓰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나는 배워서라도 글을 써야지. 허접한 주절거림이라도 듣기 싫은 징징거림이라도 글로나마 다 표현해야지. 빼앗을 수 없는 고유한 것, 나만의 것을.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오직 더 내가 되길.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될 용기를 냈으면. 하지만... 그 표현이라는 게 명백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피해를 준다면? 나는 그 지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멈추게 되는데... 그러니까 잘 듣고 더 공부하고 잘 인정하고 잘 사과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더 섬세해지고 조금씩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겠지... 두드려 맞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지. 그렇게 계속 써야지. 하긴 재능 따지기 전에 나는 아직 뭘 이루기엔 충분히 많이 꾸준히 단련하지 못했다. 아직 절대적으로 들인 시간의 양이 부족했지. 그러니까 계속하자.


 어젯밤에는 영화 라라 랜드를 봤다. 라라 랜드는 굳이 따지자면 해피엔딩이니까, 좋았다. 미아가 자신에게는 아무래도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포기하려다가 결국엔 성공하니까.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니까. 노래 가사들이 하나하나 다 찡했다. 마음이 너무 찡해졌다.


 오늘은 영화 보이후드를 봤다. 예전부터 그 영화를  좋아했다. 원래 한 번 본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것만은 여러 번 다시 찾아보게 됐다. 내가 어떨 때 이 영화를 다시 찾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문득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야말로 성장기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성장에는 아픔이 있기 마련이고 성장이란 건 언제나 벅찬 것이라서... 물론 가장 궁금한 성장 이야기는 나의 성장 이야기다. 나는 전문성을 갖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하지만 매번 도망가기 바쁘고... 도망가다가 도착한 곳이 글 쓰는 것이었는데 내 수준이 하찮고 우습게 보여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뭐 별수 있나,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은데. 그러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는 더 나아지겠지. 도망갔다가도 그냥 한번 더 해보고. 깨지고 혼나고 망신당해도 몇 번 앓고 나면 그만일. 그러니까 오늘 한번 더 써야지. 오늘은 오늘의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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