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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y 09. 2022

잘 살고 있는 걸까?

휴식기의 중간점검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나는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3달 뒤부터는 지겹도록 반복될 일상, 출근하는 일상이 시작된다. 나는 벌써부터 그 시간을 앞당겨서 두려워한다. 3개월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보통은 얼마간 쉴 수 있다면 여행을 가고 싶어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여행에는 돈이 많이 든다. 나는 그 시간과 돈과 체력을 다른 곳에 쓰고 싶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많이 읽는 것이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책들. 시간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읽은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미래의 내가 부러워할 만큼 책 읽을 시간과 글을 쓸 시간이 충분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더 치열하게 읽고 써야 할 것 같다. 애초에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뚜렷했다. 글을 쓰는 것이었다.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브이로그였다. 이전부터 브이로그를 좋아했던 나는 꼭 나만의 브이로그를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마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 나는 당장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뭐가 부족하고, 뭐가 모자라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순전히 내 재미를 위해 브이로그를 시작했고 그건 내 일상을 기록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나는 얼마든지 그 시기가 궁금해지면 브이로그를 통해 그때의 내 생각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다.


 또 그 무렵의 나는 슬슬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브런치에 글을 썼다. 아무거나 쓴다고 썼는데 돌이켜 보면 일기나 다짐 같은 것들이다. 그동안 단편소설을 썼고 동화를 썼고 시도 썼고 웹소설도 써 봤다. 생전 처음 써보는 웹소설을 위해 도서관에 가서 작법서도 여러 권 읽어 봤다.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웹소설은 공모전 때문에 시작했고 한 달 동안 매일 1편씩 연재를 하려고 노력했다. 시놉시스와 줄거리를 짜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는데, 결국은 여기저기 허점이 많았다. 웹툰은 좋아하지만 웹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손에 꼽았다. 매일 라이브로 연재를 하려다 보니 이야기는 자꾸 산으로 갔다. 물론 반응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달간 매일 4 천자씩 글쓰기를 한 덕분에 뭐라도 쓰는 근육이 발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일정 분량을 쓰면서 쓰는 데 두려움을 조금 줄이고, 거침없이 속도를 내서 쓸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고 할까?


 한 달을 그렇게 보낸 뒤에는 슬슬 다른 공모전들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문학 공모전만 생각했는데, 그것만 바라보며 지내기에는 내가 낼 수 있는 성과가 너무 미미했고, 공모전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눈을 돌린 것이 슬로건/네이밍 공모전들이었다. 짧은 글을 쓰는 공모전들도 참여했다. 매일 아침 스터디 카페에 도착하면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이메일을 체크하고, 뉴스레터를 읽고, 공모전 사이트 두세 곳을 돌아보며 새로 나온 공모전들을 체크했다. 금방 해치울 수 있는 슬로건/네이밍 공모전들은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쉽게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쉽게 결과를 얻기는 어려웠다. 두 달간 그렇게 공모전들을 들여다보며 지냈는데 당첨되어 받은 것은 아메리카노 쿠폰 두 장과 다이슨 에어랩이었다. 에어랩은 거의 처음 얻다시피 한 결과물이었는데, 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다. 한동안 이것으로 다시 글을 쓸 자신감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점점 지쳐 갔다. 뭐가 그렇게 지치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출근하는 일상에 비하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만큼, 이 소중한 시간을 더 알차게, 더 행복하게 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이 지독하게 아깝고 안타까웠다. 기뻐야 할 것 같은데 기쁘지 않고 보낸 하루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불안했다.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미래의 비극적인 시나리오들이 매일 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고 밤마다 이불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뒤척거렸다. 그게 바보 같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나는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마치 세상에 막 태어난 생명체가 매일 죽는 순간을 두려워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직장에 다닐 때의 나는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 첫 직장은 엄청나게 구린 곳이었는데, 얼마나 구린가 하면 그때 겪었던 일을 거의 그대로 소설로 써냈더니 그걸 읽어본 선생님께서 몹시 전근대적이고 공포스럽다며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두 번째로 들어간 직장은 백팔십도 다른 곳이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직장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직장이었고 누구보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종류의 직장이었다. 환경도 좋았고, 함께 일하는 또래들도 많았고, 처음 내게 주어진 업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만할 정도로 한가한 자리였다. 만족하며 지냈던 날들이 겨우 네 달쯤 지나서였을까,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직장이 점점 끔찍한 곳으로 변해 갔다. 주 6일 출근은 기본이었고 주 7일 출근이 흔해질 무렵이 되자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업무 시간 자체도 힘들었지만, 혼자서 충분히 휴식할 시간이 없다 보니 인간관계에서도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사소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가 어려웠다. 그때의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만두면 뭐하지, 다른 것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까지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썼던 것일 뿐이라고, 시간만 있으면 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가? 재능이라면 없는 쪽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해서 좌절했다. 시간이 있는데도 이뤄낸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5월이 되고 점점 더 많은 공모전들의 마감일이 들이닥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아무리 뒤져 봐도 그동안 써놓은 것들 중에서 낼 만한 작품이 없다. 마감일까지 급하게 써낸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완성도를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좌절스러웠다. 재능은 무슨, 일을 그만두기는커녕 코 꿰인 소처럼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 그곳에서 나는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지면 어쩌지.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그동안 나는 야금야금 강의들에 돈을 썼다. 시작법 강의를 2종류 들었고, 소설 작법 강의 하나, 소설 합평 강의 셋. 돈을 들이고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계속하는 이유는 일단 이것 말고는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야 어떻든, 글 쓰는 과정 자체는 내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기 이해와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심리학을 전공했듯이 소설을 쓰는 것도 비슷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면서 나를 표현하는 기쁨,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는 기쁨, 내 손끝에서 작은 세계 하나를 탄생시키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들이 분명히 있다. 어쨌든 글만 썼던 것은 아니어서, 한 달 동안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한 달 동안은 요가를 다녔다. 가족들과 산책도 하고, 드라이브도 가고, 짧지만 여행도 다녀왔다. 틈틈이 카페와 식당도 여러 곳을 다녀왔다. 다 이전의 일상에서는 거의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다시, 3개월 뒤의 나는 지금의 내게 뭐라고 말할까. 다시 매일같이 출근하는 일상,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느라 고생하고, 뭘 입고 가야 할지 고민하며 스트레스받고, 동료들과 함께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걸려 오는 전화들을 받고, 갑자기 터지는 당혹스러운 일들을 처리하고,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며 물어보고... 퇴근하고, 주말을 기다리고, 언제 연가를 쓸 수 있을지 눈치 보며 고민하는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출근을 하게 되면 브이로그는 그만둬야 할 것이다. 그럴만한 시간이 더는 없을 것 같다. 대신에 블로그에 사진이랑 동영상을 더 자주 올려야지.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합평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글을 쓸 시간이 많이 부족하겠지. 그런 일상을 살면서 글을 쓰는 겸업 소설가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진다. 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그때가 되면 장편이나 두꺼운 책들은 읽기가 어려울 테니까, 길고 어렵고 지루한 책들, 뜬금없는 분야의 책들을 실컷 읽어두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실컷 놀고먹고 싶을 테니까, 늦잠도 실컷 자고 낮잠도 실컷 자고 게임도 실컷 하고 웹툰이나 웹소설이나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나 그런 것들도 실컷 보라고 하겠지. 평일 대낮에 한가롭게 걸어 다니는 게, 평일 한낮에 거리낌 없이 햇빛을 쬐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 줄 아니까, 그런 것들도 실컷 즐겨 두라고 말해주겠지(정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스터디 카페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보내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 중 하나다).


 내가 끝내 엄청난 뭔가를 해내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하고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인채로 산다고 해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상태이건 날마다 그날의 나를 다독여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면 좋겠다. 내가 좋은 사람인 채로 지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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