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 2013

친구라는 속도, 그리고 17년

by 묵혼 김태완


제8장. 친구라는 속도, 그리고 17년



Written by funking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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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에 불쑥 합류한 차다.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을 보진 못했지만,


달릴 때마다 그의 세월과 기억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특히 이맘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면


17년 전, 광주로 향하던 그의 비행기 창밖 풍경까지도


내 메모리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듯 선명하다.




그때 그는 꽤 힘들었다.


하던 사업이 무너지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한 경제신문사에 들어가 월급쟁이로 새 출발을 한 시절.


속도는 느려졌지만, 마음만큼은 쉬이 멈추지 못하던 때였다.




그 친구, 석태도 사정은 비슷했다.


친구 보증을 잘못 서 준 탓에 다니던 H그룹 회사를 그만두고,


그의 소개로 중국 광저우에 들어가 고군분투하고 있던 시기였다.


둘 다 친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묘하게 닮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사실 그 둘은 어린 시절 부족함 없는 집에서 자랐다.


유머와 교양을 가르쳐 준 부모님,


마음 편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지낸 시절.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둘 다 연속 두 학기 올 F를 받고 학사경고를 받았고,


그 길로 나란히 군입대를 결심했다.




제대 후에는 여행 경비를 모으고 싶어서,


때로는 경험을 쌓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여름방학엔 경상도 어딘가로 일주일쯤 캠핑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오토바이를 탔고,


친구 석태는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으로 오토바이를 샀다.


어쩌면 그와 석태, 그 둘은 늘 조금씩 무모했고,


대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기질을 공유하고 있었다.




2008년, 그는 광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창밖 뿌연 도심을 바라보며


‘석태 얼굴만 봐도 좀 나아지려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친구의 말라 있던 얼굴을 본 순간


울컥함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는 얘기를


나는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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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전날 밤,


아침에 출근해야 한다는 친구를 어렵게 붙잡고


호텔 근처 허름한 양꼬치집에 앉았다.


기름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싸고 독한 이과두주를 잔에 따랐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술기운에 얼굴이 달아오를수록


묵은 마음속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묘하게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걸


그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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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이 흘렀다.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졸업 후 처음 입사했던 H그룹의 이사가 되었고,


명절이면 고향 대전에서 얼굴을 본다.




가끔은 골프장으로 가는 길,


내 트렁크에 골프백을 싣고 가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야, 그때 광저우에 있던 놈이 이사야… 세월 진짜 빠르지?”



나는 대답할 수 없지만,


대신 시동을 부드럽게 걸어 주며


그의 말을 받는다.




어느 토요일,


두 사람은 골프장 주차장에서 다시 마주 섰다.


서로의 머리에 늘어난 흰머리를 보고 웃었고,


한숨 길 때쯤 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말은 점점 줄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직도 20대의 시절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안다.


그 친구는 그에게 청춘을 증명하는 이름이자,


지금도 그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친구란,


말이 많아지기보다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그는 내 안에서 중얼거렸다.



“말 안 해도 되는 게 진짜 친구지.”


그 말이 참 좋아서,


나는 그때마다 엔진음을 더 부드럽게 낮춘다.









(여담)


https://blog.naver.com/tammy69/60047056088


2008.1.29


“ 요즘 진행하는 일들도 지지부진하고 기분도 꿀꿀해서…


항공권 끊어 광주에 갔다. 친구 얼굴만 봐도 좀 나아질까 싶어서…



한국책이 보고 싶다는 친구의 부탁에,


이번에 귀국하면 꼭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보내리라 다짐한다.


친구야, 낯선 이국 생활이지만 건강하게 잘 있어라.”


나는 그때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가끔 그의 목소리에 섞인 그 시절의 온기를 느낀다.


그리고 주강맥주 맛은 몰라도,


그때 느꼈던 고마움과 쓸쓸함만은


왠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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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대학동창.. 아니 그 이상 친구.. 내 친구

요즘 진행하는 일들도 정권교체와 맞물려 지지부진하고 딱히 되는 일도 없고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대책없...


blog.naver.com








그때 그가 썼던 그의 블로그 포스팅


https://blog.naver.com/tammy69/60047056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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