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2013

NO OTHER CHOICE ― 어쩔수가없다

by 묵혼 김태완


RRS2013


제12장. NO OTHER CHOICE ― 어쩔수가없다



Written by funking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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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주말, 그는 아내와 함께 집 앞 CGV에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보았다.


늘 그렇듯, 박찬욱은 미장센과 음악, 그리고 인물의 심리를 엮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태양(太陽) 제지에서 Moon 제지로의 이직.


주인공 만수가 삶의 궤도를 바꾸는 과정은 단순한 직장의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버림받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몸을 던져야만 하는,


운명 같은 선택이었다.



영화 속 세 라이벌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었다.


그의 성격을 조각내어 비춘 거울 같은 존재였다.


한 명은 결단력, 또 한 명은 나약함,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욕망과 불안을 상징했다.


그들을 제거하는 행위는 곧,


자기 내부를 도려내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만수 자신을 하나씩 죽여나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공들여 죽인, 그러나 끝내 아내 아라 손에 죽은 범모.


그는 만수의 분신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만수는 그를 직접 죽이지도, 시신을 처리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끝내 자기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 지점에서부터 만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시조, 그리고 선출.


범모에게는 이름도 직업도 감춘 채 모든 것을 가렸지만,


시조에게는 실직자임을, 딸아이를 키우고 있음을 고백했다.


선출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태양제지에서 일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냈다.


가장 지우기 힘든 본인을 남겨둔 채,


그의 일부였던 시조와 선출을 지워나가는 일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왜? 어쩔 수 없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 앓던 이를 뽑는 장면.


곪아 있던 고통을 도려내는 은유처럼,


만수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관객의 심장까지 저릿하게 당겨 앉혔다.


앓던 이는 빠져나갔지만, 그 공백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다.


재취업에는 성공했지만,


다른 무엇은 영영 잃어버린 것처럼.



그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내 이야기일지도 몰라.”



올해 쉰여섯.


그 역시 6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실직’과 ‘퇴직’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가 몸담은 제조업은 이미 다크팩토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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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동화와 로봇 도입을 앞장서 추진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성과를 위해, 인력을 줄여야 하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변명하듯 되뇐다.


“어쩔수가없다.”


그러나 언젠가 그 칼날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크린 위 만수의 얼굴이


마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처럼 겹쳐졌다.


버텨야 하는 의지와 체념의 변명 사이에서,


그는 박찬욱이 던진 질문 앞에 차가운 한숨을 내쉬었다.



영화관을 나와 차에 올라탔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것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dagio였다.


순간, 그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늘 클래식을 사랑하셨다.


바흐의 프렐류드,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반대로 아버지는 대중가요를 사랑하셨다.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현인의 「신라의 달밤」,


그리고 김추자, 조용필로 이어지는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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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린 시절, 집 거실 전축에서는


어느 날은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또 어느 날은 조용필과 김추자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인켈이라 믿었던 전축은 맥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스피커가


백금 케이블로 20kg의 턴테이블에 연결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서로 다른 음악을 들었지만,


결국 한 지붕 아래서 음악으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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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그는 지금도 클래식과 록, 가요를 넘나들며 음악을 듣는다.


박찬욱의 영화 속에서


Le Badinage와 ‘고추잠자리’가 같은 호흡으로 배열되는 순간,


그는 어릴 적 부모님 거실의 풍경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취향이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하던 그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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