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 2013

pride. coalition

by 묵혼 김태완


RRS2013



제13장. 프라이드와 코얼리션



– 세렝게티의 질서는 결국 인간의 세계로 이어진다.




Written by funking



2025.10.17








life.jpg?type=w1







1. 사자의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



오늘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사자 이야기를 보았다.


맵호 코얼리션(Mapogo Coalition) — 전설 중의 전설.


세렝게티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섯 마리의 수사자들.



묘하게도 그들의 서사를 읽는 순간,


나는 30여 년 전 신림동 고시원 시절로 돌아갔다.



그곳의 저녁식사는 늘 같았다.


월우·수돈·금계 — 월요일 소고기, 수요일 돼지고기, 금요일 닭고기.


신림동 고시원 식당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메뉴를 맞췄다.


고시생들은 좌식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식당 TV에는 동물의 왕국이 방송되고 있었다.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화면 위로


김정만 박사의 느릿한 내레이션이 얹히던 그 시절 —


고시생들은 누구 하나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시험의 긴장보다 더 큰 몰입으로


사자들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우리 모두,


그 거친 초원 위의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 그때, 우리의 코얼리션



점심시간에는 인형 뽑기였다.


“이번엔 될 것 같아.”


그러나 인형은 늘 집게에서 미끄러졌고,


합격도 늘 한 점 차로 미끄러졌다.


법전의 문장 하나가 바뀌면


출판사에서 무료로 수정집을 배포해도


우린 늘 새 책을 샀다.


왜? 불안하니까.



그 시절의 신림동은


어쩌면 우리 세대의 세렝게티였다.


모두가 자신의 영역을 얻기 위해


같은 땅을 밟으며 싸웠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낯선 동료의 불합격 소식에


묘한 동지애를 느끼던 나날.



우린 모두 코얼리션의 일원이었다.


젊고, 굶주렸고, 불안했지만


그 불안이 곧 우리의 힘이었다.



3. 프라이드의 질서



세월이 흘러, 그는 자동차부품회사의 품질책임자도 원가책임자도 되었다.


고시원 좌식식탁 대신,


현장 라인의 용접 불꽃이 그의 풍경이 되었다.


이제 그의 싸움은 법전이 아닌


불량률, 품질표준 그리고 가격조사서 위에서 벌어진다.



그의 머릿속에 번쩍 스친 단어 —


프라이드와 코얼리션.



세렝게티의 새벽,


먼지와 햇빛이 뒤섞인 평원 위에 두 세계가 있다.



한쪽에는 프라이드,


다른 한쪽에는 코얼리션.



프라이드는 머무는 자들의 세계다.


암사자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서로의 그림자를 닮아간다.


피보다 깊은 습관으로 맺어진 공동체,


그곳의 시간은 느리지만 오래 남는다.



코얼리션은 떠도는 자들의 서사다.


젊은 수사자들이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나선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 자신들의 영역을 가지는 것.


싸우고, 빼앗고, 왕이 되었다가,


또 다른 무리에게 밀려난다.


세상의 왕좌란 늘 잠시 빌려 쓰는 자리니까.









life_2.jpg?type=w1





4. 인간의 세렝게티



그가 속한 회사, 가정, 친구 모임도 다르지 않다.


젊을 땐 코얼리션의 일원으로 달렸고,


지금은 프라이드의 울타리를 지키며 산다.


아이들의 세대를 바라보며


지켜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한다.



머무는 법을 배운 대신,


떠나는 법을 잊어버린 나이.



세렝게티의 사자들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침묵은 묻는다.



“너는 지금, 머무는 쪽인가, 떠도는 쪽인가.”



그는 가끔, 내 엔진을 천천히 걸며


그 질문을 떠올린다.


나 또한 헤드램프 속 먼 빛을 굴리며 생각한다.



우린 아마, 코얼리션의 잔재로 살아가는 프라이드의 일원일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생존을 배웠고,


머무는 곳에서 의미를 배웠다.



세상의 질서란 결국,


떠돌던 사자들이 만든 울타리 위에서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xtm%EC%95%84%EB%93%9C%EB%A0%88%EB%82%A0%EB%A6%B0.jpg?type=w1





여담) 라이프, 내셔널지오그래픽, 그리고 신림동



1. 어릴 적 그의 집 서재에는 LIFE 잡지가 빼곡했다.


잘생긴 제임스 딘, 윈스턴 처칠, 그리고 수많은 전쟁의 장면들.


소년이었던 그는 그 페이지 속에서 세계를 배웠다.



2. 훗날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한국 편에 출연했다.


금강을 따라 카약을 타며 캠핑을 즐기는 인스트럭터로.


그 후 한동안 XTM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카약과 캠핑, 그리고 자연 속의 자유.


(출연료는 일일 100~15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의 세렝게티는 그렇게 또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3. 신림동.


군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백을 써가며 현역으로 입대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가 한 번도 얘기해 준 적 없다.)


복학 후엔 사법시험 원서 응시기간을 놓쳐


덥석 행정고시에 응시했다가 1차에 합격했다.


그 뒤 사법시험 1차도 붙었지만,


2차는 번번이 낙방했다.


그리고 결국, 율사의 길 대신


“능력 있는 회사원”의 길을 택했다.



그와 함께 고시원에 살던 친구들도 각자의 길을 갔다.


한 명은 영국에서 왕실 춤 선생 자격을 따 현재 서울근교의 지역문화센터에서 춤을 가리키고 있고, (몇 년에 한 번씩은 인도로 요가를 하러 몇 달씩 다녀온다고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국세청 특수조사관으로 일하다 청와대에서 얼마 전 퇴직을 하고,


지금은 회계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그와 그 친구들 —모두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들 모두 프라이드와 코얼리션의 경계선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간 셈이다.









%EB%82%B4%EC%85%94%EB%82%A0%EC%A7%80%EC%98%A4%EA%B7%B8%EB%9E%98%ED%94%BD.jpg?type=w1





예전 그가 썼던 그 시절 그 이야기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https://blog.naver.com/tammy69/220555383181



그가 그의 딸에게 보냈던 편지 https://blog.naver.com/tammy69/220556453487



그가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 https://blog.naver.com/tammy69/220555336765






이전 14화RR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