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itude & Attitude
Altitude & Attitude
Altitude shapes the view. Attitude defines the way.
2025.10.31
Written by Funking
그의 하루는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출근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운다.
그리고 자재 재고 리스트를 손에 든 채 공장동을 한 바퀴 돈다.
후문으로 나가 또 한 개비의 담배.
8시 5분, 통근차가 도착할 즈음이면
그는 공장 앞에서 직원들을 맞이한다.
그의 회사에는 외국인 직원이 스무 명이 넘는다.
그는 매일같이 네팔 직원들에게 “나마스떼”라고 인사한다.
그 짧은 음절 속에서 내 엔진룸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은 인사라기보다, 하루의 고도를 맞추는 의식 같았다.
그들의 눈빛은 언제나 평온했다.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웃으며 “Sir, good morning.”
그 인사 뒤에 이어지는 “나마스떼”가
어느새, 그가 오래전 히말라야 산등성이 위에서 들었던 그 말과 겹쳐졌다.
그는 그때, 네팔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하던 어느 겨울날,
공기는 투명했고, 숨은 짧았으며, 마음은 길었다.
그가 처음 네팔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떠나보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함께 카약을 타고, 함께 캠핑을 다니던 작곡가 후배의 제안으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하지만 후배는 전속사 계약을 맺고, 예능 프로그램 고정출연으로 함께 가지 못했고,
그는 친동생과, 오래된 고시원 친구 그리고 후배 작곡가의 음악 하던 동생들과 길을 나섰다.
카트만두의 공기는 건조했고,
포카라의 호수는 유난히 잔잔했다.
그들을 맞이한 이는 네팔에서 제법 큰 여행사를 운영하던 니마 셀파였다.
그는 한국 방송계와도 인연이 깊어,
히말라야 로케이션 광고나 화보 촬영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헬기를 띄워 고산으로 장비를 옮기고,
촬영팀을 안내하는 일들을 도맡았다.
그의 아내는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여 한국어에도 능통했다.
그 덕에 그는 카트만두의 고급 레스토랑에도 가고,
어느 골목의 뉴올리언스 바에서 재즈를 들으며 와인을 마실 기회도 있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곳은 가난하지만, 이상하게 부유하다.”
그의 친동생은 네팔 트레킹 기간 동안 그와 함께 롯지에서 식사하지 않고, 창고에서 포터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동생이 그들 포터들에게 느낀 어떤 감정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들은 다 해진 운동화를 신고도 웃었다.
그중 한 명은 그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지만,
사실은 훨씬 어렸다.
인도 군 복무를 마치고 생계를 위해 포터가 되었다는,
햇살에 그을린 중년의 얼굴을 한... 청년이었다.
그는 예비로 가져간 등산화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포터는 끝내 신지 않았다.
“하산하면 타멜 시장에서 팔아야 한다”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엔 기품이 있었다.
고도는 낮았지만, 태도는 높았다.
Altitude보다 Attitude가 더 위에 있었던 순간이었다.
포카라에 머무는 동안 그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넘어오는 후배들을 기다렸다.
페와 호숫가의 카페마다 기타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해 전 세계를 뒤흔들던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이
포카라의 밤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모모를 먹으며, 밀크티에 담배를 태우며,
그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가난하지만 여유롭고,
천천히 살아가지만 확실히 웃는 사람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웠다.
숨이 가빠질수록, 마음은 느긋해졌으니까.
공장의 오후.
회의실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요즘 저 친구들 너무 느려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용접라인에선 네팔 직원들이 용접을 하고 있었다.
“높다고 다 같은 하늘을 보는 건 아니야.”
그는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는 성과의 속도로,
누군가는 생계의 속도로 살아간다.
그는 이제 그 차이를 ‘속도’가 아니라 ‘태도’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의 회사에서 7년 넘게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네팔 직원이 있다.
가끔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이사님, 잘 지내세요? 여긴 포카라예요, 제 집이에요.”
그는 미소 지었다.
휴대폰 화면 속, 집 뒤로 안나푸르나의 능선이 파스텔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여전히, 그가 잊지 못한 공기의 층 —
그때의 고도가 남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그는 내 핸들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래, 내 마음의 고도도 아직 거기쯤이겠지.”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가 그날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그의 Altitude는 변했지만,
그의 Attitude는 더 높아졌다.
그는 말했다.
“네팔에서 고도(Altitude)를 배웠고,
지금은 도로 위에서 태도(Attitude)를 배운다.”
나는 그것을 Tolérance라 부른다.
가끔 그는 나를 몰 때,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숨을 고른다.
그건 멈춤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여담) 렛삼 삐리리 (Resam Phiriri)
그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제법 많은 네팔 직원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과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고 했다.
네팔에서의 기억이, 늦깎이로 입사한 그에게
소프트랜딩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처음 경험하는 제조업, 낯선 현장 관리.
그는 그 시간을 예전의 고산에서 배운 호흡으로 버텼다.
입사 초기엔 늘 늦게까지 남았다.
러시아로 나가는 CKD 물량을 맞추기 위해 잔업이 잦았다.
토요일엔 그래도 정시에 퇴근했다.
그런 날이면 현장의 네팔 직원들을 불러
소주 한 잔을 권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주고,
소맥을 나누며 웃었다.
술이 돌면 그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렛쌈 삐리리, 렛삼 삐 리 리…”
그러면 모두가 따라 불렀다.
그들의 얼굴이 환해지고,
그들 마음 한켠이 잠시 네팔의 밤처럼 따뜻해졌다.
지금도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 세 가지다.
“나마스떼.”
“비스따리(천천히).”
그리고, “렛쌈 삐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