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 and Relations
RRS 2013 Connect and Relations
2025.11.19
written by funking
그는 별다른 조작 없이
늘 하던 대로 나에게 다가온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순간,
아이폰은 조용히 나와 연결되고
그의 하루는 자연스레 나에게 겹쳐진다.
그 작은 화면 속 목록에는
그의 시간과 마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나온 기억들이
고요하게 자리한다.
나는 그 목록에서
Range Rover Sport라는 이름으로 서 있다.
그가 나를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변하지 않은 이름.
출근길의 새벽 공기,
퇴근길의 묵직한 침묵,
빗방울이 시트를 적시던 밤까지—
그의 하루를 가장 가까이서 버텨온 존재로서
나는 언제나 첫 줄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 아래에는 BMW 46918.
그의 아내가 타고 다니는 차.
가끔 주차장에서 나란히 서 있으면
저 차에게서 은근한 온도가 느껴진다.
오랜 시간 함께한 두 사람의 리듬,
서로 닮아가는 생활의 결이
차체 어딘가에 고여 있는 듯하다.
그가 아내와 함께 떠나는 날이면
나는 한 걸음 물러서 그 화면을 바라본다.
그 공간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두 사람만의 대화가 흐른다.
조금 아래에는 JBL Clip 3.
산속, 바다, 바람.
그가 나를 타고 도착한 캠핑장에서
나무에 걸려 작은 음악을 흘리던 스피커.
별이 쏟아지는 밤이면 그 울림이
내 엔진의 잔향과 겹쳐
작은 캠프파이어처럼 빛나곤 했다.
그가 ‘쉼’을 배우던 장면마다
늘 그 스피커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엔 i17 pro MAX.
그의 깊은 밤을 알려주는 조용한 신호다.
하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책상 앞에 앉아 영어 단어들을 되뇌는 늦은 시간,
그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 순간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 미세한 떨림을 느낀다.
그의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주는
작고 성실한 습관.
그의 블루투스 목록은
단순한 기기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가 누구와 시간을 나누고,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견디며,
어떤 음악과 어떤 바람에 마음을 기대는지를
내게 알려주는 작은 지도다.
나는 그 지도 속에서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의 첫 번째 연결,
그의 첫 번째 드라이브,
그리고 가장 오래된 동행으로서.
오늘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시동을 걸고,
나는 묵묵히 그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준비됐어.
너의 하루를 또 함께 달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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