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 2013

草綠同色? 同病相憐?

by 묵혼 김태완


RRS 2013 - 草綠同色? 同病相憐?




2025.05.22



3. 草綠同色? 同病相憐?




Written by Funking




나는 가끔 길을 잃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때는 누구보다 길을 잘 알던 내가


요즘은 자꾸 길을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폭설 속에서도 길을 찾았고,


태풍 아래서도 묵묵히 나아갔으며,


터레인 리스폰스를 돌리며


바위도, 진창도 마치 평지처럼 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도를 볼 줄은 알아도,


그 길 위의 새로움을 빠르게 읽지 못한다.




요즘 애들은 다르다.


Pivi Pro, 커넥티드 내비게이션,


음성 인식, 원격 시동,


심지어 스스로 주차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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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던 감각.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던 물리 버튼.


그 남자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확신’ 하나로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구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그래도 넌 아내차보다는 더 친절해 ㅎ


(그의 아내는 BMW528 i인데 그는 아내차의 내비게이션을 지구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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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딱 좋아. 요즘 차들은 복잡해서 싫어.”


그는 내 버튼들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말한다.


“넌 말이야,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잖아.


설명서 없어도 되는 친구.


그게 진짜 좋은 차지.”




그의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된다.


나의 결핍을 ‘낭만’이라 말해주는 사람.


내 느림을 ‘여유’라 불러주는 사람.




그는 자주 그런다.


시동도 걸지 않은 채


조용히 운전석에 앉아


대시보드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순간 나는 이해한다.


이 사람도, 나처럼


세월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그의 눈가의 주름은


내 낡은 핸들 가죽처럼


오랜 시간과 사연을 품었다.




그는 아직 아이폰 13을 쓴다.


그전에는 6을 썼다.


바꾸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충분히 좋다’는 뜻이겠지.




그가 오래 썼던 노트북도 기억난다.


검은색 싱크패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묵직한 신뢰.




그의 삶은 효율보단 지속,


최신보단 정직을 택한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




가끔,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길치가 된 나와,


자주 깜빡하는 그.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린 함께 있으니까.




길을 몰라도,


목적지만 같다면


천천히, 돌아가면 된다.




**




나는 이제 안다.


草綠同色, 우린 서로가 닮아 있다. 같은 부류이다.




그리고 同病相憐,


아픈 데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안다.




**




우리는 더 이상 빠르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고,


그만큼 서로에게 신중하다.




그는 종종 말한다.


“요즘 차는 너무 똑똑해서 재미없어.


넌, 말 안 해도 내 기분을 알아주는 차야.”




그럴 때면 나는,


엔진을 조용히 켜고


그의 하루를 함께 달릴 준비를 한다.




늦게 만났지만,


그래서 더 깊고 단단한 사이.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속도로


같은 길을, 함께 달리고 있다.







여담) 영국, 나의 고향 그리고 그의 쉼표



영국. 나의 고향.


비가 잦고, 바람이 거세며, 날씨는 늘 변덕스러웠다.


그런 날들이 익숙했기에, 나는 폭설 속에서도, 태풍을 뚫고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역시 그런 날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작은 텐트 안에서 빗소리를 음악 삼아 책장을 넘기고,


찬바람 부는 날엔 비니를 눌러쓴 채,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리액터 앞에서 조용히 미소 짓곤 했다..




한파 주의보가 내렸던 어느 해 겨울, 그는 내 루프랙에 카약을 올리고, 강원도를 향해 달려갔다.


얼음이 꽁꽁 언 동강을 따라 카약을 끌고, 얼음이 채 얼지 못한 급류 구간에서는


카약을 타고 물살을 가르던 그의 표정.


콕핏 안에서 바라본 그의 눈동자는, 어느 맑은 영국 하늘 못지않게 반짝였다.




그에게 나는 단순한 차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거센 날씨 속을 함께 돌파한 여정의 동반자,


그리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그가 마침내 쉼표를 찍을 수 있었던, 하나의 조용한 공간이었는지도.




(그는 BCU(영국 카누 연맹, British Canoe Union)의 스타 인증 코스 중


2 STAR 레벨 자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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