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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an 13. 2024

둘째 언니와 2박 3일(1)

내 어릴 적의 언니

언니가 셋이다.

언니, 한 분 한 분이 애틋하여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언니들이 좋아서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언니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내 기억에 어머니의 손길이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 반면, 언니들의 보살핌을 받은 기억과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다. 세 자매가 모여 팔십 세를 맞는 둘째 언니네를 깜짝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큰 언니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혼자 가게 되었다.  밤길에 처음 버스를 타고 오는  처제가 걱정이셨는지 형부가 지팡이를 집고  마중나오셨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긴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다.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으로 지난 날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신다 교직을 퇴직하셨다가, 몇 년 후 복직하신 시기가 있었다. 사업이 잘 안되어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어머니께서 보따리 행상을 시작하셨다. 민가에서 살 만한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마을을 돌며 파는 일이었다. 물건 값을 돈이 아닌 곡식이나 다른 물품으로 날은 머리에 이는 짐이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평생 앓으신 두통의 원인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린다. 어머니 장사 길에 겨우 열 살 위인 언니가 젖먹이인 나를 업고 따라다니느라 고쟁이 허리 부분이 헤어졌다. 언니 바라기였는지, 어머니 젖을 먹고 있으면서도 눈길은 언니에게 두고, 젖을 다 먹으면 얼른 언니에게 갔다.

그러는 동생이 더 예뻤을까. 똥 싼 엉덩이, 흘린 코에도 아랑곳 않고 뽀뽀를 하는 언니를 보고, 아버지께서

 “그렇게 예쁘냐”하셨단다.


초등학교 다닐 때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초등학교가 있는 면소재지에 미장원이라는 게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집 뒤란의 시원한 툇마루에서 언니가 일명, ‘바가지 머리’로 다듬어 주었다. 친구들이 예쁘다고 하여 언니에게 자랑하면 무척이나 기뻐했다.

소풍날이 다가왔다.  

언니는 이웃마을, 점포가 몇 개 되지 않아도 장터라고 일컫는 곳에서 분홍색 비단 옷감을 사 왔다.

처음으로 나와 셋째 언니의 치마저고리를 만들었다. 그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소풍 가는 동생들을 보려고 동구밖까지 따라 나왔다. 지금은 소풍이나 현장학습을 간다 하면 오히려 편안한 옷을 입는데, 그때는 소풍도 특별한 나들이였다. 검은색에 하얀 카라를 덧 단 재킷도 만들어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사진에도 그 옷을 입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언니는 다방면으로 손재주가 있었다.


중학교 때, 난생처음 새해 카드라는 것을 써서 언니에게 보냈다. 날아가는 학과 유유히 노니는 사슴과 붉게 떠오르는 해와, 반짝이며 내리는 눈 등의 풍경이 있는 그림 카드였다. 겨울방학이 되어 언니의 시댁에 가니 그 카드가 반짇고리에 들어 있었다.

새색시인 언니는 노란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모습이 노란꽃을 보듯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 그리 고운 언니의 저고리 색깔에 반해 노란색을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언니가 당부를 했다. ‘성’이라고 부르지 말고 ‘언니’라 하라고.

여기에서는 그리 부른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언니'라는 단어를.

그때 무슨 눈치를 알았겠는가마는 언니의 '시집살이가 수월찮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어머님은 따뜻해 보이는데, 나를 바라보고 웃는 손 윗 동서님의 웃음이 왠지 편치가 않았다.

시집살이를 하는 언니 집에 아니 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언니가 아기를 낳아 친정에 왔다.

학교에 가서도 머릿속은 온통 언니 생각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나기 바쁘게 동네 골목을 들어서며, 높이 떠 있는 우리 집 빨랫줄부터 살폈다. 행여 언니가 가고 없을까 봐 가슴 졸이며. 하얗고 긴 아기 기저귀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오호, 언니가 안 갔구나' 푸른 하늘이 더 높아 보였다.

이십 리 학교길을 달려온 몸의 기운을 더해, 힘차게 대문을 밀고 언니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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