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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n 30. 2024

누에의 세계

비단의 원천, 누에 기르는 이야기

친구들과 수원 국립 농업박물관에 갔다.

우리 나이에 최적화된 볼거리, 추억의 박물관 같았다. 같은 시대의 농촌에서 자라온 공감대에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양잠 전시장에 서고 보니 누에의 형상이며, 비단실을 뽑아내던 물레 등이 실물 같은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자아내고 나오는 번데기를 먹던 이야기에 모두들 화답을 했다. 나만 먹어 봤고, 나만 아는 맛인 줄 알았다. 그 시절의 우리는 같은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3남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온다. 어머니가 대문간에서 명주실을 지아내는 물레질을 하고 계신다.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넣고 쇠꼬챙이로 첫 실 가닥을 끌어낸다. 그 쇠꼬챙이를 물레에 끼워 돌리면 누에가 집지었던 실이 역으로 풀려나오며 쇠꼬챙이 실패에 감긴다. 여러 개의 누에고치에서 올라온 몇 가닥의 실이 꼬아져 한 줄의 명주실이 된다. 이 명주실이 비단이 될 것이다. 실이 점점 벗겨지며 번데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대기하고 있던 3남매가 침을 꼴깍 삼킨다. 책 보따리를 끼고 앉은 채 먹을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노르스름하고 통통한 번데기를 입안에 넣고 터트리면 부드러운 크림 같은 것이 고소하게 퍼진다. 뜨거울 때 터트리다 입안을 데이기도 한다. 뜨거운 해물탕 속 미더덕을 터트리다 데이는 격이다. 명주실을 자아내고 나온 번데기 맛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머니는 3남매에게 먹은 순서대로 공평하게 나눠 주셨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아들 딸 차별이 많던 그 시절에, 더구나 막내가 아들인데, 아들을 더 챙겨주는 차별은 없으셨다. 그렇게 맛있는 번데기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지 어른이 되어 알았다.    

 

면사무소에서 누에씨가 배급된다. 백화점 상품권 같은 상자 안에 담배씨 만한 누에 씨들이 들어있다. 알껍질을 갉아먹고 나온 누에는 고물고물 새까만게 털난 개미 같다. 여린 뽕잎을 가늘게 채 썰어 어린누에 위에 뿌려준다. 말라비틀어진 뽕잎들을 보면 뭐 먹었겠나 싶지만 우유빛으로 제법 통통하

게 커진 것을 보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에가  잠을 자고 허물을 벗으면 훨씬 커진다. 생의 한 마다. 4번의 잠을 자고 나면 완전히 성충이 된다. 꼬물거리는 누에 위에 손을 얹으면, 부드럽고 시원한 비단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누에가 4 잠 후, 5령인 20여 일 동안 먹는 뽕의 양은 실로 대단하다. 먹고 난 후 내놓는 똥의 양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이때부터 뽕을 따고 누에밥을 주는 일의 초 절정이다.

봄기운을 받아 넓적하게 잘 자란 뽕잎의 윤기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뽕을 따기 전에 오디부터 따먹는다. 뽕잎 뒤에 오디가 열린다. 뽕나무라고 해서 오디가 다 열리는 것은 아니다. 뽕나무 종자에 따라 오디의 모양, 크기, 맛도 다르 다. 재래종은 잎도 작지만 오디도 작다.  새콤, 달콤 오묘한 맛이 나고 향기도 진하다. 개량종은 단맛이 진하고 커서 입안에 넣으면 씹을 것이 있어 좋다. 오디를 먹을 때 이리저리 살펴가며 먹는다. 먼저 와 시식하고 있던 노린재라는 벌레와 함께 먹어 곤욕을 치른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큰 오디에 붙은 벌레는 잘 안 보일 수 있다. 오디를 따먹고 난 후 본격적인 뽕따기를 시작한다. 뽕잎을 따서 망태기에 꾹꾹 눌러 담는다. 머리에 이고 와 토방에 부리듯 내려놓으면 머리가 시원하다. 뽕잎 무게와 열기에 눌려졌던 머리통의 해방이다 망태기 속이 열기로 후끈하다. 뽕잎 자체에서 발생한 열로 발효된 듯 달짝지근한 냄새와 풋것의 향이 난다. 꾹꾹 눌러 담았던 뽕잎은 빨리 꺼내어 탈탈 털어 열을 식혀야 한다. 오래 두면 뽕잎이 까맣게 뜬다. 열을 식힌 뽕잎은 마르지 않게, 젖은 천으로 덮어 둔다. 뽕은 많이 따다 놓았으나 마음이 바쁘다.

저녁을 먹고 누에 밥을 얼른 줘 놔야, 부모님 몰래 살그머니 외출을 할 수 있는데 어머니는 느긋하시다. 마을 어귀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바짝바짝 다가온다. 아랫마을 후천으로 딸기를 사 먹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어머이! 누에 밥 줘야것네요.“

"더 있다 줘도 되것다."

"아녀, 지금 줘도 되것어요."

누에 채반 위에 뽕들을 부지런히 올려놓는다. 사각사각사각~ 한 마리, 두 마리, 그 작은 주둥이로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모여 비 오는 소리가 난다. 다수의 힘이란 이리도 대단하다. 누에들은  뽕잎의 잎맥만 남기고 야무지게 갉아먹는다. 누에 밥까지 줘 놨으니 부모님께서 당분간 나를 찾을 일이 없을 것이다. 밤 외출에 민감하신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이다. 하루 내 누에치기 노동을 한 나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다. 은은한 달빛아래 밤공기는 서늘하다. 날아드는 벌레들에 둘러싸인 호야불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아래 친구들과 먹는 딸기맛을 굳이 평하지 않는다. 그저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함께하는 시간이 좋을 뿐이다.  

누에가 5령이 끝나면 먹지 않고 뱃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배설한다. 누에의 몸은 빛이 투과라도 될 듯 투명해진다. 누에가 익은 것이다. 40여 일 동안 살아온 생을 정리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누에가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집을 짓도록 섶을 놓아주면 제 각각 집 지을 터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농익은 누에는 입에서 넘쳐 나오는 액을 고개를 S자로 휘둘러 점을 찍듯 선을 이어 집 짓기를 시작한다. 먼저 자신의 몸을 감싸며 얼기설기 얇은 부직포 같은 얼개를 짜서 외의 위험으로부터 방어진을 친다. 그 안에서 다시 실을 뽑아내기 시작하여 본격적인 집, 고치를 짓는다. 시간이 갈수록 누에는 점점 덮어져 보이지 않고 단하고 하얀 고치가 완성된다. 입으로 먹은 것은 나뭇잎 밖에 없는데, 나오는 것은 실이다. 누에고치 짓는 것이 불가사의한 일처럼 경이롭다. 더구나 이런 누에고치에서 어떻게 실을 뽑아낼 생각을 했을까. 대단한 발견이다. 누에고치의 얼개를 벗겨 다듬는다. 다듬어 놓은 고치 무더기 속에 손을 넣으면 뽀송뽀송하고 따듯하다. 두 손으로 한 움큼 들었다 놓으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부드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따뜻한 소리다.

 


   

누에고치를 수확하는 중에 어쩌다 방구석이나 누에섶에 있는 고치를 빠트리기도 한다. 그 누에고치에서 구멍이 뚫리고 나방이 나온다. 몸통이 통통하고 날개는 작은 하얀 나방이다. 날개는 있으나 잘 날수 없어 움직일 때 균형 잡는데만 쓰이는 것 같다. 누에나방이 외부의 도움 없이 그 두꺼운 고치를 어떻게 뚫고 나오는지, 강한 생명력에 놀랍기만 하다. 이 나방이 다시 알을 낳고,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가 성충이 되고 또 고치가 된다. 60여 일에 걸친 누에의 한 살이는 변화무쌍하고 위대한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누에의 세계는 그렇게 순환하며 돌아간다. 자연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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