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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l 01. 2024

천담마을 다슬기

아버지와 다슬기 꼬치를 나누다

지인이 다슬기탕을 살 거냐고 묻는다.

당연하다. 좋아하는 다슬기탕을 믿을만한 곳에서 판매를 한다니 아니 살 수가 없다. 택배로 온 것을 끓여 먹고 나니 난생처음 천담마을로 다슬기를 잡으러 갔던 기억이 솔솔 올라온다.  

지금은 김용택 시인의 고향마을이자, 섬진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통도 좋아졌다. 그 당시 다슬기를 잡으러 갈 때에는 오지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10여 Km 나 걸어가야 했다. 왕복 20여 Km다. 오후에 저녁 도시락을 싸들고, 마을 어른들을 따라갔다. 해 질 녘이 되니 숨어있던 다슬기들이 슬슬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예 몸을 물에  담그고 오리걸음을 하며 플래시를 비추어 보니, 다슬기들이 바위에 붙어 있다. 바람과 사람의 움직임으로 물결이 일렁이니, 돌인지 다슬기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더듬는 손에 물결모양의 돌기가 있는 길쭉한 것이 잡혔다. 검고 큼지막한 조개였다. 말조개 또는 칼조개라고 했다. 어른들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소담스럽고 신기해서 잡히는 대로 주워 담았다. 돌아오는 길의 다슬기 자루는 내 것이 제일 커 보였다. 은근히 뿌듯했다. 그날 밤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슬기를 자루째 물에 담그고 자버렸다. 아침에 어머니께서 다슬기를 박박 문질러 씻고 계셨다. 말조개는 다른 바가지에 담아 놓으셨다. 같이 삶는 것 아닌가 했더니 맛도 없고, 조개 안에 거머리가 있어서 못 먹는다고 하셨다. 아뿔싸, 그래서 어른들은 안 잡았던 모양이다.      

천담마을 다슬기는 씨알이 굵고 둥글둥글하다. 국물 색이 푸르며 맛도 진하다. 그래서 그 지역의 맛집으로  다슬기탕이 유명해진 듯하다. 지역에 따라 다슬기의 생김새와 맛도 다르다. 물에 담가 해감을 시킨 다슬기를 씻어 물기도 뺄 겸 소쿠리에 담아 놓는다. 한참있으면 머리를 쑥 빼고 더듬이가 나온다. 소쿠리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 올려 끓는 물에 빠르게 털어 넣는다. 그래야 다슬기 머리가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까먹기가 편하다. 약간의 된장을 풀어 넣고 삶으면 비릿함이 없어진다. 다슬기를 건져낸 청록색 국물과 욱이 잘 어울린다.  거기에 수제비를 떼어 넣으면  다슬기 수제비가 된다. 시원하고 쌉싸름한 다슬기의 깊은 맛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다슬기 수제비에 어쩌다 남겨진 다슬기가 하나쯤 나오면 까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져낸 다슬기는 큰 것은 까먹고, 잔챙이들은 확독에 갈아 살을 걸러내어 장조림 하듯 조린다. 짭조름한 것이 감칠맛이 난다. 졸아들어 더욱 양이 적어진 다슬기 장조림이 아까워 다슬기 알을 세듯 조금씩 먹는다.

큰 다슬기는 마루에 앉아 까먹는다. 삶은 다슬기가 담긴 양푼과 먹고 난 껍질을 담을 양푼 2개를 끼고 앉는다. 이불 꿰매는 긴 바늘로 머리 부분의 살을 꼭 찌른 다음 꽁지 부분을 잡고 회오리처럼 돌리면 밑동까지 빠져나온다. 바늘을 가득 채운 다슬기 꼬치를 아버지 입에 넣어드린다. 정면으로 넣으면 입을 찌르는 격이 되니 옆으로 대어 드린다. 아버지는 눈길과 두 손은 신문에 두시고, 무심한 듯 아무 말없이 받아 드신다.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신다. 셋째 언니와 둘이 교대로 넣어드린다. 다슬기 꼬치를 만드는 도중에 어쩌다 떨어지는 알은 내 입에 넣는다.

아버지는 그때 다슬기 맛에 흡족하셨을까.

그리고 그 순간 행복하셨을까.

그렇게 드시는 아버지를 보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느닷없이 생긴 다슬기탕을 먹으며, 생전에 다슬기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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