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님 Jul 03. 2024

토끼가 쇠뜨기를 좋아해요

토끼네 집 방문 예절

토끼한테 갈 때마다 내심 기대를 한다. 나를 얼마나 반겨줄 것인가. 토끼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토끼들이 먼저 발자국소리를 듣고 우르르 뛰쳐나온다. 긴 뒷다리를 펴고 짧은 앞다리로는 토끼장 철망에 기대어 서니 키가 훌쩍 커진다. ‘ㅅ’ 자 모양의 입과 코를 벌름거린다.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을 이리 강렬하게 자극할 수가 없다.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선물을 준비해 가듯 토끼네 집에 갈 때 풀 선물을 가지고 간다. 가지고 간 풀을 넓게 펼쳐 던져 준다. 모두들 신나게 오물오물 먹는다. 그 와중에 대장 녀석이 횡포를 부린다. 이쪽으로 폴짝, 저쪽으로 폴짝 뛰며, 입으로 다른 토끼를 밀쳐내기도 한다. 토끼들이 주눅이 들듯도 하건만, 개의치 않고 자리를 옮겨가며 먹는다.     


오늘은 토끼네 집 앞을 살살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토끼들이 몰려나올까 봐 마음 졸인다. 토끼에게 줄 풀이 없어 빈손이기 때문이다. 토끼먹이도 얻고 잡초 제거도 할 겸, 학교 경사로 화단의 잡초를 뽑으러 가는 길이다. 토끼가 발자국소리를 들으면, 자기네 집에 오는 줄 알고 100m쯤 되는 사육장 거리를 끝까지 줄달음쳐 올 것이다. 그렇게 열열이 반기며 따라오는데 풀 선물이 없다는 것은 실망과 함께 신뢰를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반가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정도의 센스는 있으니, 미안해진다.     

화단에 얻어다 심은 백합의 줄기가 제법 튼실하게 올라와 꽃망울 맺을 준비를 한다. 산나리도 꽃피울 준비 중이다. 보라색 초롱꽃은 한창 만개했다. 주변에 개망초, 씀바귀, 달개비, 쇠뜨기, 강아지 풀 등 잡초들이 많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쇠뜨기 풀이다. 쇠뜨기는 다행히 뿌리가 많거나 깊지가 않아 잘 뽑아진다. 뽑아낸 쇠뜨기는 토끼도 못 먹일 것 같아 따로 모았다. 언덕이 비탈진 데다 돌이 많은 박토여서 흙이 적었다. 잡초를 뽑고 비어진 주변에 흙을 북돋아 주었다. 한편에서 쉬고 있던 학생 활동보조하시는 분이 와서 뽑아 놓은 쇠뜨기 풀을 한 아름 안아 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갖다 버릴 겁니다.”

“토끼 주려고 합니다. 토끼가 쇠뜨기 풀을 좋아합니다.” 하며 가지고 간다.

아차차, 그렇다면 내가 토끼에게  갖다 주고 사랑받는 건데...  토끼네 집 방문 선물을 놓쳤다. 나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가져간 것 같은데, 나를 돕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배려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하다.          

교내에 동물들을 길러 학생들의 생태학습에 도움을 주고 싶으나 부지가 좁아 어려웠다. 어느 선생님이 집에서 기르던 당닭을 학교로 가져왔다. 주차장 귀퉁이에 닭장을 만들어 기르기 시작했다. 음료수 박스에 금자리를 만들어 알을 낳게 하고, 알을 모아 부화를 시켰다. 부화된 병아리가 자라 닭의 숫자가 늘어났다. 문제는 닭똥 냄새였다. 비라도 오고 난 후는 더욱 심했다. 의견들이 분분하여 닭보다 토끼를 기르기로 했다. 이웃학교에서 토끼 몇 마리를 분양받았다. 검은색과 갈색 토끼들이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인 친구를 방문했다가 토끼사육장이 있어 암컷 한 마리를 데려 왔다. 흰색 몸에 까만 점이 있고, 검은 눈동자의 눈 주위는 검은색으로 샤도우 한 것 같은 깜찍한 모습이었다. 토끼를 기르던 여학생이 주면서 잘 키워달라고 당부를 했다. 우리 학교 사육장에 넣으니 우두머리 수컷이 쪼르르 나왔다. 양쪽 귀 사이 머리와 등에 갈기 같은 갈색 털들이 서 있는 모습이 제법 위엄이 있었다. 입과 코를 벌름거리며 새로 온 흰 토끼 주위를 맴돌았다. 행여 텃세를 부리며 따돌림 할까 봐 걱정되었다. 잘 키워달라던 여학생의 말이 스쳤다. 다행히 새로 온 흰 토끼는 잘 적응하여 새끼까지 낳았다.  얼마 전, 어른 토끼가 머리, 배 등의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엷은 핏빛의 물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새끼를 낳은 것 같았다. 새끼 낳을 만한 곳을 은밀히 살펴보니 하얀 털 위에 빨간 것이 꼬물거린다. 자신의 털을 뽑아 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낳은 것이다. 가슴이 찡하다. 어미의 모성애는 어떤 경우든 숭고하고 감동을 준다. 어느새 주먹만 하게 자란 흰색, 검은색의 새끼가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볼이라도 비비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지금은 흰색 토끼의 수가 다른 색 토끼 수보다 우세하다. 유전적으로 흰색이 우성이 아닌가 싶다. 토끼장을 아무리 잘 막는다고 해도 어느 틈새로 나오는 건지 울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새끼가 있다. 가출하여 자유를 얻는 것은 좋으나 행여 천적을 만날까 봐 걱정이다.

학교 주무관님이 울타리에서 뻗어내리는 개나리를 정리하느라 가지를 쳤다. 쳐낸 개나리 가지를 우리에 넣어주니, 새끼와 어른 토끼들이 쉬기도 하고, 나뭇잎을 따먹거나 줄기를 갉아먹는단다. 새끼와 어미가 이 채식만으로는 영양 보충이 안될 것 같다며 사료를 줘야겠다고 한다. 토끼 사랑이 진하게 묻어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쾌적한 환경이 되도록 알뜰히 보살펴주는 손길이 있어도 의문을 남긴 채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어미가 새끼를 낳다가 잘못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일이어도 출산으로 인한 것이라니 더 가슴이 아린다. 숭고한 새 생명의 탄생에 기쁨과 축복만 있어도 부족할진대... 토끼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분들의 사랑을 느끼며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우리 학생들이 생명의 소중함에, 아름다움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천담마을 다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