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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l 20. 2024

되돌아가고 싶은 첫걸음

 미숙함에 남는 아쉬움

인천에 있는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장애인 사회복지 시설과 같이 있는 사립 특수학교였다.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생활관에서 장애아이들과 함께 생활지도를 겸하는 일이었다. 3월 개학을 앞두고 2월부터 미리 근무하게 되었다.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 없이 오게 된 입장으로서는 오히려 숙식이 해결되니 좋은 점도 있었다. 밤낮을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재미도 있었다. 



단지, 어려운 것이 있다면 식사 문제였다. 융통성 없는 급식실 조리사의 음식 솜씨는 털털한 식성을 가진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기름에 볶긴 했으나 퉁퉁 불은 오뎅, 시다 못해 물러진 양배추 물김치, 최대한 부풀은 흰콩 조림이었다. 같은 부식이라도 조리법을 조금만 달리 해주면 좋으련만, 늘 같은 메뉴였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균형 잡힌 영양식은 염두에도 없는 듯했다. 조리사에게 영양식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지혜와 직업관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통근하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총각선생이 식당으로 와, 식사 중인 우리들을 휘 둘러보았다. 밥을 먹다말고  중지했다. 왈칵 쑥쓰러움이 올라왔다. 식사메뉴에 투덜거리고도 잘 먹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이었다. 



2월의 날씨는 밤에 추위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생활관에서 야간근무로 배치받은 방에 들어서니 서늘하고 눅눅했다. 아이들과 같이 카키색 미 군용매트 위에 군용 담요를 깔고, 덮고 누웠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몸이 자꾸 새우 등처럼 오그라들었다. 새벽녘에 방바닥이 미지근해지나 싶더니 그 온기는 도둑고양이처럼 지나갔다.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아침에 매트를 접으니 아래가 축축했다. 다음 날엔 두개를 깔아도 올라오는 습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수처리가 안된 화장실까지 방안에 있으니 습기가 더 심한 것 같았다. 

뇌성마비로 지체장애가 있는 인수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활동이 부자유스러워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배치한 것이었다. 인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수업이나 방과 후 시간에 인수의 이동능력과 허약한 체력을 향상하기 위한 신체활동을 주로 하도록 했다. 인수는 야뇨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입을 오므리며 울상 짓는 표정을 보면 이불에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수의 그 표정은 6개월의 짧은 근무 기간이었지만, 내내 나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었다. 줄곧 어린 마음이 잘못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긴장했을까, 내가 따뜻한 보호자였어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토닥이고 보듬어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8년 전, 그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장 자격연수를 같이 받게 된 인연으로 연수 동기생들과 같이 모이게 되었다. 혹시나 인수가 그 시설에 남아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시내 외곽으로 기억되던 학교는 도심 한복판이 되어 옛 그림자는 오간 데 없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학교 시설은 학생들의 직업 재활시설까지 잘 갖추어지고 발전해 있었다. 오래전 그 사회복지 재단과 학교 이름이 변경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교직원들까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인수에 대해 물어 보았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인수를 만나면 토닥여주고 싶었다.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안타까웠다. 인수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 첫 아이이기도 하지만, 서투른 초년생의 미숙함으로 배려를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첫 교직을 설렘과 두려움과 열정으로 시작하였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다. 어느 드라마처럼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다시 만나 잘 보살펴주고 싶다. 교직생활 중, 아쉽고 미련이 남는 일들 중 하나로 가슴 한켠에 멍울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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