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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l 21. 2024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는 것은

첫 연구수업 평가의 눈물

갑자기 코가 시큰해지며 눈물이 다. 여기 두 번째 학교로 옮겨와 치른 신고식 같은 연구수업 평가 중이었다. 그 눈물은 평가에서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한 설움뿐만이 아닌, 가슴을 짓눌렀던 연구수업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등 복합적인 것들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임용 후 처음하는 초등과정 실과 연구수업이었다. 본시제재는 기본 ‘바느질하기’였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시침질, 홈질, 새발뜨기 등을 했다. 개별로 돌아보며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하게 했다. 학생들의 흥미나 집중도가 높아 보였다. 개별화 수업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마무리도 잘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수업시간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연구수업 평가 시간이었다. 대부분 ‘교사의 발언이 적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들이었다. ‘아니, 학생들이 잘 따라 하는데 뭔 발언을 그리 많이 하여야 하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긴장된 탓에 수업을 자신감 있게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내가 더 큰데 말이다. 평가 의견들이 수업 중 학생들과 적절하게 묻고 응답하는 상호작용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꼭 그 부분만이 부족했을까. 아마도 보아줄 수 없을 정도의 수업이었는데 그 정도의 평가로 지나가준 것일 게다. 그러니, 수업진행이나 지식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졌겠는가. 연구수업 평가가 끝나고 교무부장님이 눈물을 달고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어디 연구수업 평가하겠어요.”

부드러운 듯 단호한 말이 내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이 말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은 것은, 평가에 울 정도의 자신 없는 교수실력이라는 것에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부정적인 의견들이 섭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가르쳐 주고, 키우고자 하는 따뜻한 관심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무부장님이 평가에서 나온 이외의 의견도 말해주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돌아보고 배우며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평가 의견들 하나하나를 자양분 삼아 신출내기에서 더 성숙한 교사로 커가기 위한 단계의 일부였다. 어떤 평가나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이런 계획하에, 이런 교육적 측면에서, 이렇게 의도적인 지도를 한 것이라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정립해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특수학교는 1980년 당시, 경기도이면서 서울 생활권이며, 특수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학교라 했다. 아직은 특수교육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미비한 시기였으나, 학교시설과 교육시스템을 갖춰 학교 나름의 교육과정 체계가 잡힌 학교였다. 그러나 이 학교도 역시 교사들이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생활관에서 돌봄을 겸하는 학교였다. 때마침, 교사들이 출. 퇴근을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교사들이 주야로, 교사와 생활지도사로 이중 근무를 하는 것은 과중한 업무였다. 다행히 교사들의 출. 퇴근이 허용되어 학교 앞에 100만 원짜리 전세방을 얻었다. 그래도 주야 근무로 숙식이 해결된 덕에 생활비가 절약되어 전세금을 모을 수 있었다. 부엌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부엌 한 칸, 방 한 칸인 문간방이었다. 전세방에 동료 선생님들이 집들이를 왔다. 변변한 살림살이가 있을 리 없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과 오렌지 가루를 넣고 휘저어 오렌지 주스를 만들고, 있는 채소를 다 넣어 부침개를 했다. 이후 바가지 오렌지 주스와 부침개는 추억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산 책장을 겸한 책상이 나의 애착 보물 1호가 되어 오랜 기간 함께했다. 나만의 독립공간을 처음 가져보는 뿌듯함에 한동안 젖어 지냈다.      

집에서 솔향이 짙은 소나무 숲길을 걸어 학교길로 나오면 코스모스 길이 교문까지 이어졌다. 학교에 도착하면 배우 남궁원을 닮은, 잘 생긴 호태씨가 열쇠를 자랑스럽게 꺼내 교문을 열어주었다. 교문을 지키며 오가는 사람의 통제권을 쥔 호태씨의 일에 대한 자부심은 아무 책임과 근심 걱정 없는 순전한 즐거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즐거운 표정으로 맑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출근길을 맞이해 주는 호태씨와의 첫 대면은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했다. 두 번째 학교가 교사로 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도록 했지만,  혹독한 다른 길을 걷게도 했다. 



정년퇴직 이후, 사회 초년생이 되어 다시 새로운 의욕으로 가득 찼다.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니 초보 수준이라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다양했다. 배움과 체험활동을 하며, 교육계 밖의 사람들을 폭넓게 사 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니 생활이 더욱 활기차졌다. 내가 소속된 곳마다 한 명씩은 인연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얻는 것이 결국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옛일을 바라보니, 이 학교에서 내 교육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된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40년 이상연을 이어가고 있는 교무부장님이다. 살아가며 격정의 고비를 맞게 될 때마다 내 편이 되어 지혜를 나눠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잘 살아가고 있음이다. 평생 멘토를 만난 것만으로도 이 학교에서 근무한 의미를 특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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