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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l 23. 2024

스승님을 만나고, 이별하고

옛 동지들과의 따뜻한 마음나눔

드디어 1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특수학교 개교다.

1985.3.1. 개교를 앞두고 임용된 교사들이 2월부터 출근하여 개교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학생모집과 학급편성이었다. 교장선생님께서 학생명단에 학생들의 생년월일과 만 나이를 적어 넣으라 하셨다. 만 나이라니, 그 계산을 어떻게 하지... 어찌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그나마 교육경력이 있다고 연구부장으로 지명을 해 놨는데 학생들의 만 나이 계산도 못 하고 있으니, 교장선생님의 마음 속이 온전치 않으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모두들 서툰 중에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거의 초임교사들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학교를 여는 작업을 하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가르치며 끌고 가 주시었다. 당시 인쇄기도, 컴퓨터도 공급되지 않은 때였다. 틀리면 다시 쓰기를 반복해야 했다. 복사본이 필요할 경우 먹지를 대고 썼다. 다량일 경우는 원지(기름종이)에 철필로 글씨를 새기고, 유성잉크 롤러를 굴려 등사를 했다. 첫 해에 온 교생에게도 프린터의 조상격인 이 등사 방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다음 해에 교육청에서 인쇄기가 지급되어, 등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세상이 발전해 가는 것을 한 치 앞도 못 보고, 교생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그 무용지물이 된 등사 방법을 익혔던 교생인 장선생님이 올 8월에 정년 퇴임을 한다고 한다. 세월이 쏘아 놓은 화살같이 빨리도 흘렀다.

학교를 새로 세우는 일이니 갖추어야 할 서류며, 시설 등의 준비가 숙식을 하며 일을 해도 끝이 없는 듯했다. 개교한 해 2학기에 첫 장학지도를 받았다. 좋은 평을 받기는 했으나 시작에 대한 노고를 응원해주기 위한 평이 아닌가 싶다. 어찌했든 학교 형식의 틀은 잡힌 것이었다. 장학지도 일원들이 학교를 떠나마자 선생님들이 모두 교무실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누가 모이자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통한 것이었다. 물로 축배의 잔을 들었다. 그때의 기쁨과 뿌듯함이라니 돌이켜 보아도 나라를 세운 것 같다. 그 해 겨울 EBS 방송의 해 뜨는 교실 ‘현장 특수교육’에 출연하고, 경기도교육청 방학생활 장학자료를 집필해 내고, 발달장애아를 위한 에어로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등 2~3년의 짧은 기간에 교장선생님께서 그간 쌓아오신 풍부한 경험을 아낌없이 쏟아내시고,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쳐주셨다. 교사 개개인의 특성을 어쩜 그리도 잘 파악하셨는지, 적재적소에서 모두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덕분에 교장선생님의 교육행정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특수교사로서 가야 할 교육자의 길을 정립해 가는 초석이 되었다. 교육 인생의 스승님이셨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정으로 오랫동안 늘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돌보아주셨던 교장선생님께서 저 지난해 운명하셨다. 학교 초창기 때의 일꾼들이 모여 애도하고, SNS에서 더 마음을 나눴다.     

 



이선생님의 첫 글

영원한 교장선생님을 떠나보내며.

학교 초창기 때 교장선생님을 모셨던 옛 전우들이 영전에 모였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때 고생스러웠던 개교시절을 회상하며 추억담을 나누었습니다. 임교장님께서 당신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승을 떠나기 전 꼭 보고 싶다고... 최선생, 한선생, 강선생, 장선생, 김선생, 최선생, 오선생, 홍선생, 이선생, 그대들이 보고 싶다며... 겨울바람 유난히 차고 매웠던 그곳에서 그래도 젊은 혈기로 학교를 세워 특수교육의 요람으로 이룩했습니다.

"깐깐한 나 때문에 모두 고생들 많았소."

임교장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시며, 저 세상에서도 한 분 한 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겠지요. 덕분에 많이 배웠고, 올곧은 교육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답글 1

감동입니다. 철이 없어서 그때는 몰랐던 소중한 추억들을 이렇게 섬세하게 짚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이런 발견들이 지금부터의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교훈을 줍니다. 어제 많은 좋은 것을 추억하고 배우는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답글 2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다니, 이선생님은 역시 큰 어른이십니다. 임교장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드리고픈 글을 쓰다가 중지하고 있었습니다. 임교장님을 어찌 기려야 할지 제 능력이 닿지 않았는데, 마음이 좀 풀리는 듯합니다.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서 언제든 뵐 수 있을 것처럼 미루다, 잘해드리지도 못하고, 그리도 원하시던 우리 모임도 못 해드렸습니다. 영정사진을 뵈오니 마음이 편해 보이시지 않아서 그도 마음 아팠습니다.


답글 3

임교장님을 보내드리는 한선생님의 슬픔이야 어느 누가 더할 수 있겠는지요? 교장이기보다 큰 오라버니처럼 아버지처럼 혈육의 정을 나누며 수십 년을 지내왔기에 그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한 선생님 같은 큰 나무를 심어 놨기에 그분은 마음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교장으로 또 학교법인의 이사장으로 잘 받들었고 지성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교육의 스승님을 만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으나, 아프고 아픈 영원한 이별을 받아드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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