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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ul 26. 2024

재회

잃은 줄 알았던 인연을 다시 만나다.

여름방학 중이었다. 교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당직교사의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다. 교장실과 교무실은 칸막이를 한 것이어서 방음이 잘 안 되었다. 학기 중의 시끌벅적할 때야 들리지 않을 소리지만 지금은 조용한 상태였다. 나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누가 교무실로 전화를 하지? 의아해하며 교무실로 갔다. 수화기를 들고 통성명을 하니, 수화기 너머에서 물었다.  

“혹시 00 학교에 있던 한정님 맞습니까?”

“네.” 

“나, 신 00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돌아가셨다는 분의 목소리! 하늘에서 내려온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맞다. 

“아, 그, 그런데, 교장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사람을 좀 찾을 일이 있어 ‘특수학교 요람’을 뒤적이다 우리 학교 교직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 설마 하며 전화를 해 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학교에 있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야말로 꿈인가, 생시인가, 이 전화가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전 근무지에서 이 학교로 오게 된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초창기 무렵, 교육청 장학사님으로 만났던 분이다. 학교에 장학지도도 오시고, 업무 처리차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한시적으로 시험을 거쳐 특수교사를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특별채용을 할 때가 있었다. 이에 지원을 해 볼까 하여 장학사님께 문의를 하니, 친절한 안내와 함께 격려를 해 주시니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하던 차에 큰 힘이 되었다. 지원서류 준비 중에 교장선생님께서 같이 더 일해보자고 하셨다. 내 가정 사정도 고려해 볼 일이었지만, 개교부터 이 학교에 쏟은 열정과 애착 탓인지,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섰다. 이 학교를 떠나서는 못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떠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리저리 마음 고생했지만, 나에게 이 학교가 차지하는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지 불과 몇 년 후 법인이 바뀌었다. 개교 이래 계속해 오던 연구와 교무부장을 내려놓고 학급 담임에만 전념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가 원숙해진 중견교사로서 온 열정을 오로지 교육에만 쏟을 수 있었던 내 교직생활의 황금기였다. 모름지기 교사는 담임을 해야만 알 수 있는 담임의 맛이라는 것이 있고, 교직생활에 남는 것은 가르친 보람만 남는다는 것을 절절하게 알게 해 준 고마운 시기였다.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의 출생지역까지 언급되는 말들에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내 학교를 만들거라’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뜬구름 잡듯 가당치 않은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가볍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씨가 되었는지, 이 학교로 옮겨와 학교법인 운영에 참여하며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중이었다.   



   

뜻밖의 장학사님 전화를 받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전화를 드려 만났다. 안부와 궁금한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다, 정말 궁금하지만 차마 말하기 힘든 질문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

당신도 그 떠도는 말을 들었단다. 아마도 사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그렇게 와전된 것 같다고 했다. 상처를 하신 것에 대해 위로의 말씀부터 드려야 했지만, 내가 괜히 마음고생을 했구나 하는 허망한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앉아계시는 분이 유령이 아니라니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사마천의 사기 중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도 바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비의 정신까지는 아닐지언정 나를 인정해 주고 신뢰해 주셨던 분을, 초등학교 교장으로 전근가셨다는 소식을 끝으로, 잊고 있다가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죄송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잃었다고 생각했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니 새로운 인연을 맺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의 인연은 돌고 돌아 어떻게 다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묘한 세상 이치인 것 같다. 오랫동안 기억해 주고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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