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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Dec 28. 2020

장르극, 코로나19

7. 스웨덴과 한국 사이의 일본

 스웨덴이 입헌군주제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은 '우리의 방역이 실패했다'라고 말한 사람이 국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다. 왕이 실패했다고 한 고백을 아니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지난여름 스웨덴의 방역이 조금 위대했을 때, 전문가들이 내린 평가는 ‘균형점을 잘 잡았다’는 것이었다. R0 값, 즉 ‘감염 재생산 지수’를 1보다 크지 않게 유지하려는 정책은 고강도 정책보다 오히려 섬세할 수 있다. 스웨덴은 아마도 그때그때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정책을 선택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재확산의 불길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 고강도 정책을 펼친 우리는 백신의 희망 앞에서 오히려 차선 변경이 쉽지 않다. 스웨덴이 저강도요, 한국이 고강도라면 그 사이에 일본이 있다. 중강도의 방역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입헌군주제인 일본에서 실패를 인정한다는 고백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면 방역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 모두 훨씬 느슨한 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일본을 '준집단면역' 국가로 부르기도 한다. 감염자를 추적하고 유증상자를 신속하게 선별하는 우리와 비교해서 일본을 방역에 실패한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이 집단 면역에 준하는 기민 정책, 즉 국민을 버리는 정책을 취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코로나에 취약한 고령층이 피해를 받게 됨으로써 노인 인구를 감소시켜 초고령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실제로 시사인 691호(12월 22일 자 발행)에 실린 한일 설문조사에서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잘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이 67%인데 비해, 일본은 28%로 낮았다. 코로나 대응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는, 일본의 시민 사회나, 27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일본 정치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생각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와 비교하면 사회 분위기와 정부의 대처가 다르다. 코로나 기간 중임에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내 여행 장려 정책인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사업을 추진하다, 코로나 확산세가 커지는 바람에 12월 들어서야 일시적으로 사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지난 11월 초에는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산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야구장 관람석을 80% 넘게 채우는 실험을 실시했다. 우리 같으면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무모한 실험이라고 언론의 질타를 받았을 일이다. 또한 한국과 같은 엄격한 격리나 철저한 역학 조사도 없다. 현실적으로 자가 격리 기간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지난 2월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 호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수백 명의 승객들이 하선했을 때, 특별한 추가조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자택으로 귀가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도 이런 경우 2주간의 추가 격리를 실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코로나 검사도 의사 진단이 필요하다. 코로나 의심 환자인 경우에도 고열뿐 아니라 산소포화도가 93% 이하로 떨어져야 코로나 검사를 하라는 후생성 지침도 있다. 산소포화도는 보통 95%까지를 정상으로 보는데, 미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에 걸렸을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는 코로나19 환자인 경우 산소포화도 94% 이하는 중증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할 때 매우 느슨한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얼마 전 블룸버그 통신이 코로나 대응을 잘한 나라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는 4위다. 진정성과 노고에 비하면 우리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다. 백신 접근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종합 점수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12월 28일) 오전 기준 인구 10만 명당 환자 발생은 한국이 111명인데, 일본은 171명이다. 참고로 스웨덴은 3921명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성적이 낫지 않느냐고 좋아하기에는 비교 집단의 스케일이 다르다. 인구 10만 명당 환자 발생이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네 자리 숫자고 미국이 5천 명을 넘는다. 일본이 한국과 함께 잘 대처하는 동아시아의 국가로 묶이는 이유다. 


 일본이 방역에 실패한 국가라는 판단은 시기상조다. 국가의 태도만이 방역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진정성이 꼭 전략과 함께 가는 것도 아니다. 일본이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사항이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속해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숫자에 있어서 아시아와, 특히 동아시아와 서양의 차이가 너무 크다. 한국은 1.5명이고, 일본은 2.53명인데, 미국은 99,67명이고, 영국은 105.08명이다. 물론 통계에는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긴 하지만, 동아시아의 치명률은 상대적으로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강도 정책을 쓰는 나라보다 중강도 정책을 쓰는 나라의 '가성비'가 높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통계를 말하다 보니 스탈린의 말이 생각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가성비 운운하는 것이 통계만 말하는 사람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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