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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Dec 27. 2020

장르극, 코로나19

6.  스웨덴, 처음엔 틀렸고,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방역정책의 한쪽 끝에는 록다운(봉쇄령)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집단면역이 있다. 우리 정부의 방역정책은 양 극단을 피하고 그 중간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집단면역을 반대하는 이유는 극단적인 정책을 피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집단면역이 극단적인 조치일까? 억제에서 완화로 방역정책을 바꾸면 그 속에는 어느 정도의 집단면역이 포함된다.  


 코로나 초기부터 여름, 가을까지 쓰였던 집단 면역이란 말은 자연 면역을 말하지만, 요사이 나오는 집단 면역이란 말은 주로 백신을 이용한 군집 면역을 가리킨다. 집단 면역은 항체를 갖는 것을 의미하지 자연 면역이든 백신이든 방법은 상관없다. 코로나를 이기는 방법은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바이러스를 이기겠다면 그렇다. 하지만 코로나가 해결되는 방식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독감에서도 그렇듯이,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화될 수도 있다. 지금도 남아공과 영국의 코로나 변이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모든 변이가 불길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치명률이 낮아지는 변이도 진행 중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쁜 바이러스가 착한 바이러스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런 행운이 빨리 오지 않는다면, 코로나에 감염되어 항체가 생기든, 교차 면역으로 생기든 항체 보유자가 늘어나서 군집 면역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도 코로나가 해결되는 방식의 하나다. 하지만 여기에는 희생자가 따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집단 면역을 입에 올리면 위험할 수 있다. 백신을 손에 들고 있을 때만 입에 올리시라. 요사이 다시 집단 면역이란 말이 오르내리는 이유다.  


 앞에서, 지난 7월 우리나라의 항체 형성률이, 0.03%라고 했을 때, 이것을 ‘항체 자원’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매우 적은 보유량인 셈이다. 항체 보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감염을 늘려야 한다는 말인가? 의료 자원이 없는 매우 가난한 나라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자원이 있는 웬만한 나라라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배짱은 부릴 수 없을 것이다. 집단면역에 따른 정책을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 인구 집단 속에서 항체를 지닌 사람들을 60% 내지 70% 정도 만들기 위해, 코로나19에 걸려도 잘 죽지 않는 치명률이 매우 낮은 건강한 젊은 세대들의 항체 보유를 점진적으로 증가시킨다. 대신 고령자나 기저질환이 있는 취약자들은 감염 차단을 위해 강력한 억제 조치를 취하고, 일단 감염된 사람 중에 유증상자를 빨리 선별하고, 중증환자인 경우 집중 치료하여 사망률을 낮춘다.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의료 능력의 범위 안에서 확산을 통제하면서 집단면역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집단 면역을 택한다고 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확산 통제를 위해서 선택적이고 부분적인 억제정책과 적절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방식이나 전략을 병행할 수 있다. 그것은 감염병의 전파력이나 확산 양상, 치명률, 가용할 수 있는 의료 자원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여 결정할 일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한 나라가 스웨덴이다. 


 코로나19는 전 세계가 겪는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과 정책이 좋은지 이 터널을 다 지나기 전에는 말하기 어렵다. 스웨덴의 경우, 코로나 사태 초기에 집단 면역을 선택했다고 해서 많은 관심이 쏠렸다. 특히 한국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더더욱 찬성하기 어려운 선택이라 비판적 보도 일색이었다. 스웨덴의 선택은 전 세계적인 입장에서 보아도 예외적이긴 했다. 예외적인 것을 넘어 ‘미친 짓’에 가깝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단기적인 진실과 장기적인 진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상황이야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웨덴에 대한 보도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상대적 소강기에 들어간 여름에 이르자 그 톤이 바뀌기 시작한다. 스웨덴을 세계적 문제아에서 모범생으로 추어올리는 평가들이 다시 등장했다. 2020년 8월 스웨덴의 확진자 수는 예상외로 적었다. 상대적으로 스웨덴 인구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구 비율을 적용해 적극적 방역조치를 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다. 가령 누적 사망자 수를 비교해보면 벨기에는 9천 명 대인데, 스웨덴은 5천 명 대이다. 인구비를 감안해도 사망자 비율이 더 낮았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확산의 불길이 스웨덴까지 삼켰다. 균형점을 잘 잡은 스웨덴의 방역 정책도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더 이상 밸런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억제책을 도입했고 스웨덴이 잘못된 정책을 선택했다는 비난이 다시 돌아왔다. 처음엔 틀렸고,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 하지만 스웨덴이 틀렸는지는 알 수 없다. 스웨덴은 그때그때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정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백신이 있는데, 자연 면역을 통해서 군집 면역을 전략으로 삼을 정부는 없다. 코로나와의 싸움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a marathon, not a sprint)’라고들 말했다. 장기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단기전인가 장기전인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그런데 지금 놀랍게도 우리 눈앞에 백신이 나타났다. 지금 우리에게는 절망과 희망이 함께 존재한다. 확진자가 1,000명을 넘나드는 확산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동시에 백신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백신의 땅까지 건너가기 전에 백신 없는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장기적 전략은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집단 면역의 논쟁은 백신 없는 시기의 장기전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백신이 효과를 나타낸다면 자연 면역을 통한 집단 면역의 논쟁은 당분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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