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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Dec 26. 2020

장르극, 코로나19

5.  기자회견 취소 - 코로나 사태에서 기억해야 할 한 장면

 사실 중앙임상위원회는 앞서 언급한 기자회견 외에도 여러 차례 의견을 발표했다. 중앙임상위의 발표 내용은 어떤 의미에서는 ‘적절한’ 무서움을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중앙임상위는 억제전략에서 완화 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다. 부분적으로 보건 당국이 중앙임상위의 조언을 받아들인 부분도 있지만 사회적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언론은 중앙임상위가 기자회견을 했다는 사실 보도는 내보냈지만,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 이유를 따지거나 맥락을 짚어주지 못함으로써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끌지 못했다. ‘코로나에서 기억해야 할 단 하나의 언론’이라고 말하는 뉴욕타임스의 ‘칼 짐머’와 같은 코로나 기사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보도나 기사가 적지 않았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봉쇄하고 뿌리 뽑아야 한다는 태도 앞에, 그리고 초과된 감정 앞에 누군가의 목소리는 묻혔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중앙임상위원회의 기자회견 취소였다. 


 ‘코로나19 겨울, 의료 시스템 준비’를 주제로 9월 16일 열 기자회견은 증거기반 의학적 관점에서 해외 공개 학술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항체 양성률의 의미와 코로나19 치명률과 위험도 등에 대한 내용을 오명돈 중앙임상위원장이 발표할 예정이었다. 음모론이 버젓하게 판을 치고, 정치적인 의도를 깐 근거 없는 주장들이 사실인 양 SNS와 술집에서 오르내릴 때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는 스스로 공론의 장에 나서는 것을 삼가야 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과학적 근거와 증거를 가지고도 토론의 무대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발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계속 들리지 않은 척 외면해온 중앙임상위의 주장은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감염은 감수하자는 주장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선정적으로 표현하면 집단 면역에 대한 주장이다. 집단 면역이라 하니까 깜짝 놀라, 앞에서는 ‘완화 전략’이라 하지 않았느냐, 언제 그런 과격한 주장을 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일찍이 지난 3월부터이다. 국민의 60%가 항체를 지녀야 집단 면역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발언의 행간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연 면역에 의해서 항체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연 면역에 의한 항체 획득은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것이고, 바이러스 노출은 곧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연 면역’이란 단어를 ‘집단 면역’으로 바꾸면 된다. 단,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라는 전제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집단 면역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국민들을 방치하는 일종의 기민(棄民) 정책, 즉 국민을 버리는 정책으로 받아들였다. ‘집단 면역’은 나쁜 말에 속했다. 중앙임상위는 3월 23일 자 기자회견을 통해 ‘방역정책 대안으로 집단감염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물러서야 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해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집단 면역의 개념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집단 면역 카드를 왜 빼들었을까? 오명돈 위원장의 기자회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미국의 CDC에 견줄만한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는 한국의 방역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했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에서는 유보적인 판단을 내렸다. 중앙임상위가 이러한 제안을 한 배경도 비슷하다. 단기적인 억제 정책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지속 가능한 방역정책으로의 전환을 제안한 것이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역정책 안에는 집단 면역의 개념이 포함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료한 답이 있다. 코로나에 대한 ‘위험 판단’ 인식이 다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집단 면역이라는 말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뒤로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집단 면역이 미묘한 뉘앙스를 나타낸 적이 있다. 7월 초,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나라의 항체 형성률, 즉 항체가 생긴 사람의 비율이 0.03%라고 발표되었다. 3,055명의 조사 대상 중 항체를 지닌 사람이 한 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매우 낮은 수치로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방역이 매우 철저하여 항체 형성률이라는 시험에서 거의 100점 가까운 점수를 맞은 것이다. 최우수 점수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항체를 가진 사람 수가 너무 적어 인구집단이 자연 면역에 의한 혜택을 보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치다. 다른 나라의 항체 형성률과 비교해보면 확연하다. 당시 스페인은 5.0%였고, 영국 런던의 17.0%와는 비교불가였으며,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낸 일본의 0.1보다도 낮았다. 0.03이라는 수치는 잠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머물다 사라졌고, 우리의 방역 전략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로는 작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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