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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Dec 25. 2020

장르극, 코로나19

4. 우리 사회의 세 가지 층위의 경험 위에 내려앉은 코로나

 사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코로나가 처음은 아니다. 2009년의 신종플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조류독감에 대한 보도가 나와 사회적 불안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감염병에 대한 사회적 패닉을 몰고 온 것은 신종플루였다. 치명적인 전염병인 것처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제 사망률은 어땠을까? 정확한 자료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 보통 인플루엔자에 의한 사망률을 1% 미만이라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0.1%, 0.1% 미만, 0.05~0.1% 등등의 추정치가 쓰인다. 신종플루는 어떨까? 전문가들에 의한 증거기반 사망률은 0.02%라고 한다. 이 수치는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시기에, 코로나19에 가장 모범적인 역할을 했다고 칭찬받는 뉴욕타임스가 보여준 사망률 그래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건 사망률 때문 아닌가? 계절성 인플루엔자보다 높은 수치라고 말할 수 없다.  


 신종플루를 겪은 우리 사회는, 우리 몸의 면역 B세포가 침입자를 기억하는 것처럼 2009년 바이러스 침입 당시의 두려움과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기억 속에 잘 보존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15년 메르스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다. 메르스는 전 국가적인 재난으로 격상하며 학교가 문을 닫는 등 사회를 마비시켰다. 2009년 신종플루의 기억에 높은 치명률이 결합되자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훨씬 더 설득력을 지닌 채 사회적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여기에 결은 다르지만 세월호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안전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긴 세 층위의 경험 위에 내려앉았다. 


 우리 사회의 코로나19에 대한 반응은 면역 기제와 유사하게 작동했다. 우리 사회의 면역 기억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기억해냈고 과거의 공포와 당시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그래, 그놈들이 다시 왔다’는 두려움의 기억은, 마치 B세포가 T세포에게 공격을 명령하듯이 보건기구와 의료기관 그리고 언론매체 등에 킬러 세포와 같은 역할을 주문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바이러스에 대한 봉쇄적 태도로 나타났다. 정부는 봉쇄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많은 개인들은 봉쇄를 모델로 한 전략을 짰다. 소독제와 마스크가 봉쇄 전략의 대표적 무기였다. 알코올 성분의 소독제는 바이러스 박멸의 가장 믿을 만한 ‘과학’이다. 모든 입구엔 소독제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피부를 통해서 건, 공기를 통해서 건 바이러스라가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치밀 전략을 세웠다. 곧이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립의료원을 방문하여 ‘총력 대응’을 주문한 것은 2월도 되기 전인 2020년 1월 28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대응해달라고 주문한다. 문대통령이 한 이 발언의 주체는 문대통령 자신이면서, 보건 당국이며, 국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국가와 사회는 바이러스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근대화된 보건 시민들이기도 하다. 문대통령은 재빨리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읽어냈고 정부는 강력한 총력 대응 조치를 취한다. ‘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조치들이 정상적인 조치가 되었고, 우파 일부에서는 더 과한 대응에 해당하는 봉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코로나19에서 ‘과하다’는 것과 ‘정상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인 데라다 도라히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태를 두려워하지 않고 넘기거나 두려워하며 지내기는 쉽지만, 적절하게 무서워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럴 때 두려움이란 초과하거나 모자란 감정이다. 트럼프나 전광훈 목사나 혹은 8.15 집회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모자란 감정이고, 어쩌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훨씬 이전부터 지하철 모든 칸을, 마스크를 쓴 사람으로 채운 우리의 모습이 초과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초과된 감정들은 감정의 소비로만 끝나지 않는다. 초과된 감정들은 질병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하나의 담론이 형성되고, 그렇게 지배적인 주장이 생기면 여론과 정책에 영향을 끼치며 다른 의견들을 배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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