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K-방역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K-방역을 준비하고 실행하며 방역 정책을 이끄는 것은 정부다. 그렇다면 K-방역은 정부로부터, 혹은 현재의 집권당이나 사회 엘리트로부터 온 것일까? 정부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보건 의료적인 성격을 떠나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잘 읽어낸 것이라고 본다. K-방역은 집행의 주체인 정부의 역할이 당연 중요하나 그 기본적인 압력은 사회로부터 온다. 더 정확히는 중산층의 보건과 안전에 대한 담론이 K-방역을 생성시키고 유지시키는 근본적인 엔진이다. 따라서 사회 일각에서의 현재의 방역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은, 한국 사회 중산층의 보건과 안전 담론에 동의하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혹은 보건과 담론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체득하지 못한 개인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한 사회의 감염병에 대한 혹은 보건적 위기에 대한 태도는 다만 보건 의료적인 인식과 그에 따른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사회적 담론이나 사회적 태도가 보건의료적 대응에 영향을 끼친다. 코로나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감염자와 감염자의 동선이 언론과 SNS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마스크가 백신 없는 시대의 백신 역할을 했지만, 당시에는 아직 마스크에 ‘백신이라는 작위’를 내리지는 않은 때였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계몽되지 않은 2등 시민이거나 위생과 보건의 근대가 오지 않은 사회적 루저로 취급하는 시선이 존재했다.
마스크를 비유적인 의미의 백신으로 보자면 한국은 매우 이른 시기에 집단 면역에 성공한 국가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하철을 예로 든다면, 마스크 의무화로 과태료를 부과하기 이전에 이미 마스크 착용률이 90%를 훨씬 넘었다. 거의 100%에 육박하는 마스크 착용률을 보인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집단 면역에서 60% 내지 70% 정도면 효과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우리가 보여준 태도는 그 기준을 훨씬 상회하였다. ‘집단면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초과 달성이요 과잉이다.
과잉인 이유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리라. ‘질병’이기보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측정 불가능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위험성이 큰 것에 대하여 엑셀 자료를 오름차순으로 정렬하듯 공포심을 갖지 않는다. 공포와 두려움은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위험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감정과 태도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선택적이다. 가령 우리는 코로나를 공기 전파를 통해 감염된다고 매우 두려워했고,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공기감염 이외에는 달리 전염경로를 해석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어쨌거나 공기를 통한 감염이란 무척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위험하다면 만지지 않으면 되고, 장갑을 낄 수도 있다. 먹지 말라면 삼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공기를 마시지 않을 수는 없다. 막기도 어렵다. 공기로 전파되는 질병을 가진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공기가 오염되었다고 상상한다. 공포와 상상력은 가장 나쁜 조합이다. 만약 우리 주변에 매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기로 감염될 수 있는 병에 걸리고, 그중 2,000명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까? 그런 병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면, 마스크 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식당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병은 코로나 이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결핵이 그렇다. 결핵은 홍역과 더불어 공기 전파가 가능한 대표적 전염성 질환이다. 불과 몇 년 전인 2016년까지도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년 새롭게 결핵에 걸렸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최근 결핵환자 신고 연보를 보면 2019년 1년 동안 결핵에 걸린 사람이 23,821명이고, 2018년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1,800명이다. 사망 통계는 2018년까지만 나와 있다.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은 매년 통계에 잡히고 그 통계는 질병관리청 백서에 친절히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23일 현재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자수가 739명으로 2018년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은 결핵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한국의 강력한 방역조치로 인한 것임은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