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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Jan 29. 2021

장르극, 코로나19

22.  백신 시대 K-방역의 또 하나의 숨은 병기, 주민등록증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은 아직 충분한 임상자료가 없다. 우리가 스푸트니크V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나발니를 체포한 러시아의 정치적 후진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엾게도 가말레야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그저 순수하게 백신 연구에만 몰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신에는 종종 의구심이, 정치적인 신뢰의 문제가 붙어 다녔다. 그것은 주로 국가적인 신뢰와 동반했고, 어느 때는 진영과 블록의 신뢰와 함께 하기도 했고, 때로는 국제적인 신뢰의 중요성이 요구되기도 했다. 음모론이 백신과 함께 등장하는 이유다.


 ‘한 나이지리아 이발사는 백신이 무슬림을 해치려는 서구의 음모라는 가설에 대해 “백인들이 진짜로 우리를 죽이고 싶다면, 더 쉬운 방법이 많이 있어요. 코카콜라에 독을 타도 되고......”라고 말했다.’ 음모론이 허구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음모론은 대부분이 가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음모론이 가짜는 아니다. 지난 2011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진행했던 ‘가짜 백신 접종 작전’이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이 사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미국이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예방 접종을 해주고 있다’고 믿게 됐다”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행위의 심각한 조작’으로 생명을 구하는 예방접종 활동이 위협받게 됐다며 미 중앙정보국을 비난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이슬람 지역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 요원 여럿이 살해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스푸트니크V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의 정치적인 후진성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정치 과정이 없는 사회서 만든 백신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성숙은 코로나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줄여줄 수 있을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민주주의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와 나머지 민주주의다. 바로 그 ‘직접민주주의’의 나라, 약 7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로 백과사전에 소개되어 있는 스위스가 이르면 오는 6월 코로나19 제한 조치의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아마도 스위스가 이 국민투표를 통해 한층 더 코로나19 제한에 국민적인 힘을 실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뇌플릭스로 쉬지 않고 드라마만 보았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실망하여 21세기부터 일절 뉴스를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설마 하면서 꺼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 안이 통과되어 드디어 올해 1월 1일부터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EU를 떠나 과거의 역사로 돌아간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코로나19 방역의 타당성을 묻는 국민투표를 최초로 실시하는 나라가 제한 조치의 폐지를 결정한다면? 혹은 국민투표의 결과로 집단 면역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백신에 대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무력화된다면?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쓴 미즈시마 지로는 스위스의 민주주의를 논하며 ‘역설적인 것은 오히려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던 장치들 가령 국민투표라든가 하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포퓰리즘의 정치 수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작년 말 미 경제주간지 블룸버그가 코로나 대응을 잘하는 나라 순위를 매기면서 백신 접근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여 일본을 우리보다 두 단계 위인 2위로 평가했다고 지난번에 말했다. 그 평가는 잘못일 수 있다. 일본의 백신 접근성은 일본이라는 국가까지 접근하는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 백신은 일본이라는 국가까지는 왔지만, 국가에서 개인으로 가는 길은 멀다. 일본은 우리와 같이 전 국민을 전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일본에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따라서 누가 백신을 맞고, 맞지 않았는지, 더욱이 2회 접종의 경우 누가 1회 접종을 했고, 누가 2회 접종을 마쳤는지 전 국민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계획은 백신 쿠폰을 우편으로 발급하고 희망자가 지정 의료 기관 등에 예약한 후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판 주민등록증인 ‘마이넘버카드’라는 것을 2016년부터 추진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등록률이다. 2020년 말 현재 일본의 마이넘버카드 등록률은 24% 정도에 머물고 있다. 


 21세기 한국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후진적이라고까지 생각할지도 모른지만, 한국의 경우가 특별하다. 전 국민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모든 공적인 서류에는 이 번호가 요구되고, 연동되며, 전산화된 나라는 한국이다. 코로나 백신 전 국민 접종에 가장 잘 준비된 나라는 한국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일본이 접종을 먼저 시작할지라도 먼저 접종을 완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매우 장점인 이 전산화된 개인 정보는 권위주의적 시절의 부산물이다. 1968년, 세계가 68 혁명을 겪고 있을 때, 한국은 반세기 후의 바이러스의 침입을 예견하고 주민등록제도를 만들었다. 백신 시대를 맞는 K-방역의 또 하나의 숨은 병기는 주민등록증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여기에 저항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는 코로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가치로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사생활 보호 등의 가치가 강조되는 사회였다면 이렇게 효율적인 주민등록제도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백신의 방해꾼은 예전부터 지녔던 선진적 시민의식인지도 모른다. 이래서였을까? 슬라보예 지젝은 코로나 사태에 맞는 정치체제는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화들짝 놀랄 필요는 없다. 한국, 미국, 일본 등에서 말하는 기본재난소득이나, 트럼프가 민간 자원을 정부가 통제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한때 공산주의 방식이라고 자본주의 사회가 비난하던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음모론이나 CIA, 그리고 민주주의 등의 이야기는 백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신뢰와 관련된 문제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정작 위기를 맞이하는 것은 사회체제와 민주주의다.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한 기술과 과학은 이제 화학적 마술을 통해 백신에 정령에 불어넣을 만큼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위기는 생물학적으로 왔는데 정작 증상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코로나 백신은 최초로 화이자와 모더나 같은 핵산 백신을 통해 혁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회와 정치의 영역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지 않은가 묻게 된다. 백신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없다고 말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정치에서는 민주주의의 종주라는 미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사람들이 의사당에 모여 있고, 민주주의의 원조라는 스위스는 코로나 국민투표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죽은’ 백신들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나와 있는데 숙주들은 시끄럽다. 그래서 보건교사 안은영이 이렇게 말하는지 모른다. ‘산 것들이 문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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