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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Feb 01. 2021

장르극, 코로나19

23. 보다 안전해진 코로나 백신, 아이자, 아스드라제네가, 스부드니그V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그리고 스푸트니크V. 이 네 가지 백신 중에 코로나 시대에 가장 안전한 것은 모더나 백신이다. 가장 불안한 것은 ‘스푸트니크V’이다. 나발니의 동생까지 체포했다고 러시아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스푸트니크’라는 단어에는 파열음이자 격음인 ‘푸,트,크’가 세 개씩 들어 있다. 그다음이 ‘아스트라제네카’로, ‘트’와 ‘카’ 두 개, 화이자는 마찰음 ‘ㅎ’이 들어가는 ‘화’가 문제다. 모두 비말이 튀어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리들이다. ‘모더나’는 용케 이 걸 피했다. 지난 6월에 나온 SF작가 배명훈의 짧은 소설 〈너희가 ‘차카타파’의 진심을 아느냐〉는 코로나 시대의 발화법을 다룬다. 비말이 튈까 봐 ‘카타르시스’를 ‘가다르시스’로 발음해야 하는 뉴 노멀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이 바이러스가 ‘코’로 시작하지 않나? 우리는 지금 대단히 전략적인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거다. 


 백신의 안전성이 문제 되는 것은 다른 약들은 아픈 사람에게 주지만, 백신은 멀쩡한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뢰 외에도, 백신 자체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우리가 들어본 유명하다는 코로나19 백신 중에 생백신은 없다. ‘백신아, 백신아, 살았니? 죽었니?’라고 물었을 때, ‘살았다!’라고 답한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도망이 답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백신은 증식하지 않아 생백신만큼의 효과는 없지만, 생(生)백신에서 사(死)백신으로 옮겨가는 것은 백신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번에 다룬 폴리오 백신의 사례였다. 


 본초학 연구자인 ‘투유유’가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내 노벨상을 탄 나라답게 중국은 주로 전통적인 사백신을 개발했거나 개발하고 있다. 임상 데이터만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안전한 방법이긴 하다. 유전자 기술을 적용한 보다 현대적인 방법은 벡터형 백신이나 핵산 백신이다. 벡터형인 아스트라제네카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운반체인 아데노바이러스가 주인 노릇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이다. 어렵사리 아데노바이러스 유전자에 코로나19 표면 단백질 설계도를 끼워 넣어 보냈는데, 우리 몸의 면역 사령부에서 뒷좌석에 앉은 19사단 사단장은 본체만체하고, 운전병에게 경례하고 꽃다발 주는 일이 있을까 하는 염려다. 코로나19 항체 대신 아데노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면, 뭐랄까, 토선생하고 불러야 할 것을 그만 호선생으로 부르는 꼴이다. 그러다 범 내려올 수 있다. 코로나19라 다행이지 역병의 시대에 범은 호환마마(虎患媽媽)를 가리킨다. 호환마마는 천연두를 부르는 말이었다.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벡터 백신은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런 염려는 안전의 문제라기보다는 효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경우는 기술적 관심이 mRNA를 감싸는 포장지에 있다. 이중 가닥의 안정된 DNA라면 모를까, 여리여리한 mRNA가 목표로 하는 세포 안까지 무사히 가려면 중간에 집적거리는 이성을 만날 수도, 강도를 만날 수도, ‘열하’와 같은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널 수도 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금지옥엽 어화둥둥 하는 것이 mRNA라 포장지가 매우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온도로 낮춰야 하고, 가격도 비싼 이유다. 하지만 이 부분은 효과에 해당한다. 안전에 대한 염려는 혹시나 mRNA라는 유전정보가 우리 유전자에 만에 하나라도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우려다.


 세포로 들어간 mRNA는 우리의 유전정보가 고이 간직된 핵 속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는다. 외국서 온 특사가 청와대 예방은 하지 않고 쌀쌀맞게 자기 일만 보는 것과 같다. 유전정보가 저장된 세포핵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 바깥인 세포질에서 3D 복사기를 붙잡아놓고 ‘설계도 사본’으로 작업을 한다. 다행히 우리 세포질에는 원본을 가져오라는 둥 강짜를 부리는 관료적인 직원이 없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면 ‘설계도 사본’은 파쇄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그러므로 우리 유전자가 딴 맘 먹고 몰래 mRNA와 썸을 탈 기회는 없다. 메커니즘 상 비슷하지만, 그래도 썸을 탈 가능성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높다. 말도 안 돼! 날 뭘로 보고! 역시나, 보건 교사 안은영의 말이 맞았다. ‘죽은 것들은 의외로 잘 뭉치지 않는다. 산 것들이 문제다.’ 자존심에 깊은 크레바스가 생겼다면, 아마 당신은 펄펄 살아있는 자연산 코로나19 백신 대신, 양식이라도, 모더나나 ‘아이자’, 혹은 ‘아스드라제네가’, 심지어는 ‘스부드니그V’라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우리가 맞았던 예방주사들이 백신이었다. 심지어는 하루에 여러 방을 한꺼번에 맞았다. 학교와 군대서나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전근대적인 기억으로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일이고, 소아과에서는 접종에 편의가 있다며 권장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 조심해야 할 경우가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많은 백신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소아마비, 홍역, 황열 등으로부터 살아남았다기보다는 백신으로부터 살아남았다. 백신으로부터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받아들인 것은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소아마비, 홍역, 황열이라는 병원체이므로. 


 우리가 백신을 거부한다면, BCG 예방주사는 물론이지만 투베르쿨린 피부반응 검사도 받을 수 없다(요새는 인터페론 감마 분비 검사를 주로 한다). 모두 타자인 항원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피부반응 검사도 받았고, 앞에서 말한 대로, 그 많은 백신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백신을 두려워할까? 율라 비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식민지 시절 뉴잉글랜드에서 마녀 재판을 당했던 여성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은 치유자나 산파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디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저에 깔린 연관성은 뚜렷하다. 치유하는 능력과 해치는 능력은 긴밀히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 율라 비스 책 〈면역에 관하여〉에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책 뒷부분 미주에 나온다. 


 호환마마에서 호환(虎患)은 처음엔 호환(胡患)이었을 것으로 본다. 호(胡)는 오랑캐라는 뜻이다. 이 말이 쓰인 시대에 맞추면 청나라가 해당된다. 처음엔 호랑이(虎)가 아니라 오랑캐(胡)였던 이유는 뒤에 붙은 마마도 마찬가지다. 마마(媽媽)도 오랑캐 말이다. 청나라요, 만주족의 말인 만주어이다. 만주족이라니, 뒤에 정말 동전만 한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밀어버리는 변발 스타일의 거친 사람들이 생각날지 모르나, 산뜻한 느낌을 갖도록 예를 들면,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랑랑이 만주족이다. 무서운 괴질이나 역병을 남의 나라 말로 부르는 것은 병을 타자화 하는 것이고 두려움을 타자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호랑이 호(虎)로 바뀌는 것은 수입산 두려움이 국내산 두려움으로 바뀌는 과정의 산물이다. 그런 호환마마 뒤에 또다시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린 괴질이 호열자였다. 여기도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 그걸 말할 한가한 때가 아니다. 호열자란 콜레라다. 골레라가 아니라. 전염병들은 무서운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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