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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Feb 10. 2021

장르극, 코로나19

26.  코로나 병원들에 보내고 싶은 ‘설 4종 세트’

 영화 같이 기묘한 코로나 시대를 비추는 TV 스크린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레벨D의 방호복을 입은 이들은 누구일까? 화성으로 사람과 물자를 보내겠다고 큰소리친 엘런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서 뉴 시즌을 겨냥해 새로 선보인 우주복 패션모델들일까? 아니면 태양의 제국에서 보내온 외계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질병관리청에서 보낸 파견직 소독팀일까? 그런데, 어딘가 지쳐 보인다. 그렇다면 기간제 외계인이 맞다. 지구인이라면 저렇게 물을 마시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으면서 버틸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의료 종사자들이 입고 있는 방호복이다. 레벨D의 방호복. 그것은 의류계의 ‘락앤락’이다. 어떠한 외부 바이러스도 입장을 허하지 않겠노라는 결연함을 보이는 의학적 전투복. 머리와 손과 발까지 감추기 위해 머리 전체를 덮는 후드가 딸리고 장갑과 덧신을 추가해야 하는 전신 보호복으로, 후드를 덮기 전에 N95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해야 한다. 때로는 허리에 3㎏짜리 전동식 호흡장치(PAPR)를 차야할 때도 있다.


 이 방호복은 입고 벗는 데도 순서가 있다. 우주복만큼은 아니겠지만, 옷을 입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입자마자 느끼는 것은 갑갑과 답답이다. 부직포로 된 옷이라 통풍이 되지 않는다. 지난여름에도 이 옷을 입고 마당에 설치한 선별 진료서에서 일을 했다면, 30도가 넘었고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으리라. 스님들도 더워서 하안거에 든다는 삼복의 더위에. 여기에 3킬로 호흡장치까지 차고 기본 4시간 근무를 한다면, 그곳은 위장된 태릉선수촌이 분명하다. 그런데 격리 병동이라면 인력이 부족해, 다시 옷을 입고 근무에 재투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는 목마르고, 답답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자기가 자기를 유폐시키는 1회용 감옥이다. 


 레벨D의 방호복은 규정이었을까? 질병관리청도 지침을 내려 보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 사회의 기밀 전략의 하나 아니었을까? 어떤 공기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막아야 한다는 의료의 근대가 취한 전략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우리 시대의 매우 유능한 해결책처럼, 또 ‘레벨D의 방호복’을 지시한 누군가를 색출하는 작업을 한다면, 그 추적 작업이 양심적이라면, 그 명령이 우리 사회로부터, 우리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 초기에 자주 등장했고, 한 동안 뜸했던 그 '중앙임상위'가 사무국을 두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어떨까? 그곳에서도 레벨D의 방호복으로 철통 방어를 하고 있을까? 다행히 그곳에는 ‘레벨D의 방호복’을 대신하여 전신 가운과, 장갑과, 얼굴 가리개 역할을 하는 페이스 쉴드와, 놀랍게도 덴탈 마스크로 구성된 ‘4종 세트’가 있다. 에어로졸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페이스 쉴드와 덴탈 마스크 대신, 고글과 N95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 여기는 통풍이 되고 바람이 스치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의료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보라매 병원에서도 ‘4종 세트’를 쓴다고 한다. WHO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레벨D의 방호복 대신 4종 세트를 권한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중앙임상위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자칫 이 방역의 노력에 엇박자를 내지 않으려는 조심성으로 비친다. 중앙임상위가 뭘 하는 조직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렇게 ‘4종 세트’를 권하는 조직이라고 말하면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소한 일을 하는 데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4종 세트’는 지속 가능한 방역의 모습이며, 가장 확진자가 많이 있는 공포의 무대에 안심과 적절함의 조명을 달아주고자 하는 노력의 상징이다. 병원부터 ‘적절한 무서움’을 찾아갈 때, 우리 의료 자원이 받고 있는 압력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고, 그럴 때 돌봄의 영역이 충실해지고 넓어지는 것이리라. 물론 ‘적절한 무서움’이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병원은 그 어느 곳보다 각종 병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레벨D의 방호복은 어쩌면 레벨C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기에 ‘4종 세트’로의 전환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이런 설득조차 쉽지 않았다고, 중앙임상위에 몸 담고 있는 관계자의 말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적절한 무서움'이란 말은 앞서 두 번의 인용에서도 밝혔듯이, ‘데라다 도라히코’의 말이다. 1935년 일본에서 화산이 분화했을 때의 혼란을 보고 남긴 말인데, 본인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간토대지진을 겪은 일도 일기로 남겼다. 지진의 와중에도 ‘이 드문 강진의 진동 경과를 가능한 한 자세히 관찰해야겠다 생각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점도 놀라웠지만, 우물에 독을 넣었다느니, 폭탄을 던졌다느니 하는 뜬소문을 듣고 그가 했던 말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변두리 동네까지도 휩쓸어 버리려면 도대체 몇 천 킬로그램의 독약, 몇 만 킬로그램의 폭탄이 필요할 것인가. 이런 어림짐작만으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도토리〉라는 그의 수필집에 지진일기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뜬소문들은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 바로 우리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빌미였다. 


 데라다 도라히코는 수필가이기도 했지만 본래는 물리학자였다. 공포와 혼란의 시기에 과학의 상식을 지킬 수 있었던 과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의 혼란 속에서 중앙임상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기묘한 플랑카드가 걸린 명절에도 누군가는 쉬지만, 또 누군가는 병원을 지켜야 한다. 만약 병원이라는 곳에 선물을 보낼 수 있다면 아직도 ‘레벨D의 방호복’을 입는 코로나 병원들에 ‘설 4종 세트’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상상을 해본다. 코로나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코로나 병동 발령이 날 때, 주변에서 코로나 옮긴다고 수군대는 것이 무서워 가족들과 떨어져 따로 방을 얻는 비용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1923년이다. 거의 100년 전의 사건이다. 그때도 과학적 상식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런 뜬소문이나 수군거림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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