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벌거벗은 현대사 유럽편, 리슈만편모충으로 설명하는
리슈만편모충은 기생충이다. 사실 역사학자들은 한 가지 작은 원인으로 역사 전체의 변화를 설명할 때 약간의 희열을 느낀다. 지금부터 뜬금없이 하려는 이야기는, 그 끝에 바이러스가 등장할지는 모르지만, 리슈만편모충으로 설명하는 유럽의 현대판 빅히스토리이며, 그 유럽 현대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게다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괴로운 이야기지만, ‘장르극, 코로나19’에도 영향을 미쳐 한 회가 늘어나기까지 했다. 시리아 내전은 이미 뉴스에서 자취를 감춰 심지어 시리아 내전이 끝났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1년에 시작한 내전이므로 올해 2021년을 떠올리는 분들은, 10년째 전쟁 중임을 느끼셨으리라. 여러 통계가 있지만 대충 국민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나라를 떠나 난민이 되었다. 그 난민이 유럽으로 향했고 때마침 북아프리카 난민과 합해져 유럽은 난민이 쇄도하는 대륙이 되었다.
유럽 통합은 유럽의 오랜 꿈이기도 했지만 세계 시장을 통합하고 국경을 열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와도 겹쳤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국경의 개방은 경쟁력 없는 전통 산업의 많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들었고, 이는 미국에서도 확인한 일이다. 주가는 올랐지만 일자리는 사라졌다.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는 개혁의 상징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청바지는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이럴 때 들이닥친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은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유럽을 바꿔놓았다.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을 타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도 코로나 사태로 느꼈지만, 두려움과 공포는 나와 남 사이의 경계를 강화한다. 우리 사회도 초기에 국경을 봉쇄하자고 했듯이, 경계를 만들고, 중국의 ‘불결한’ 우한 수산물시장을 범인으로 지목하듯이, 타자를 혐오하고,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듯이, 남들을 적대시한다. 난민은 유럽의 ‘말(mal) 아리아(aria)’, 즉 나쁜 공기가 되었다. 이 ‘말라리아’가 전염되어 나온 증상이 유럽의 극우정당들이며, 유럽의 트럼프들이며, 영국의 브렉시트다.
그때 난민의 혐오를 이미지로 보여준 것이 리슈만편모충증이다. 리슈만편모충은, 모래파리(sandfly)가 이 기생충을 지닌 개나 고양이의 피를 빨 때 모래파리 체내로 들어오고, 그 모래파리가 인간을 흡혈할 때 침과 함께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온다. 말하자면 매개체가 필요한 전염병이다. 온난화가 더 진행되면 모르겠지만, 한국은 매개체인 모래파리가 아직 없어 이 전염병이 정착할 가능성은 없다. 매개성 질병이란 말은 수혈이나 적극적인 밀접 접촉 없이는, 인간들 간에는 전파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병은 난민이 전파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소문을 탔다. 여기도 장르극이라 전형적인 과정이 있다. 다음 순서는 작명. 시리아 내전 중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의 이름을 따서 ‘알레포의 악마(Aleppo Evil)’로 명명된다. 리슈만편모충증의 대표적 증상은 피부에 생기는 수포다. 얼굴 전체를 수포로 덮은 징그러운 사진이 SNS로 퍼지고,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은 이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확진자’가 되었다. ‘살 파먹는 시리아 전염병 ‘알레포의 악마’, 난민 타고 유럽 번지나’는 우리나라 언론에까지 난 기사 제목이다. 리슈만편모충은 난민의 유입을 막는 근거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
지중해성 기후인 남부유럽은, 리슈만편모충을 인간에게 옮기는 모래파리의 서식지로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다. 이미 1930년대부터 이 병에 대한 통계가 나와 있고, 전문가들은 남부유럽을 리슈만편모충증이 정착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 근래에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이 병이 확산되고 있는 데는 지구 온난화가 중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남부유럽은 점점 더 모래파리의 서식에 유리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리슈만편모충증은 외부에서 온 병이 아니라 이미 유럽 내부에 있었던 병이고, 지구온난화에 책임이 있는 유럽도 이 병의 피해자라기보다는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글에서는 리슈만편모충증을 ‘열대성 소외질병으로 주로 개발도상국의 빈곤하고 소외된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선진국에서도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때 선진국이란 유럽을 말한다. 만약 남부유럽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코로나만큼 피해를 주지만, 문명의 지도에서 어느 위도 위에서는 잊힌 질병인 말라리아 같은 운명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리슈만편모충은 난민이 되어 돌아옴으로써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신자유주의는 리슈만편모충을 만나 유럽의 정치지형을 바꿔놓았으며, 동시에 신자유주의는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한 대로, 공공의료를 약화시킴으로써 코로나 사태를 악화시켜 유럽의 고령층 사망을 촉진했고, 그로써 코로나19를 공포스러운 질병으로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유럽의 정치적 위기는 코로나 방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금 유럽의 현대사를 써나가고 있는 것은, 메르켈도, 보리스 존슨도, 마크롱도 아닌 리슈만편모충이다. 일찍이 노예에서 왕이 된 자 있어도, 기생충에서 왕이 된 자는 없다. 아니, 왕이라기보다 합스부르크가도 이루지 못한 통합 유럽의 황제다. 황제에게는 잘못을 묻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유럽의 정치적 위기에 리슈만편모충과 함께 공범이고, 코로나에 있어서는 코로나 자체에는 책임이 없다 할지라도, ‘코로나 위기’에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황제의 제국에 정의의 법정이 있다면 신자유주의는 재판대에 오를 것이다. 리슈만편모충은? 당근 사면이지, 리슈만훤머츠가(家)인데, 바보야.
끝으로, 네이선 울프가 쓴 〈바이러스폭풍의시대〉는 리슈만편모충을 자연 상태에서 감염시키는 작은 바이러스를 찾아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88년의 일이다. 네이선 울프는 책에서 ‘기생충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들을 찾아내면, 기생충을 바이러스로 치료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그 낙관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 백신을 1년 만에 개발하는 시대에 30년이 넘도록 뚜렷한 백신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니, 21세기 유럽의 지형을 바꾼 초대형 주연급에 대한 예우로는 많이 모자라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사망자, 실종자, 실향민, 난민자의 숫자를 합치면 코로나 피해 못지않은 시리아 내전을 10년째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크게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