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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시작의 알림 #16 밥

by 홀로서기

허 한 마음 붙잡고 대구를 들어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갈 때가 없어 집 주차장에 주차 한 뒤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가만히 몇 분간 차에서 조용히 있었다. 잠시 뒤 내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걸어갔다. 며칠 전까지는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제는 멀리서 보아도 컴컴한 집이 되어 버렸다. 승강기 해당 버튼을 누르고 8층입니다. 목소리와 함께 내린 후 비밀번호를 눌렀다. 현관문 알림 소리에 문을 열었다. 신발장위 불만 켜지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며칠 전 사람이 있었고 ‘오빠 왔어’ 반겨주는 전처가 있었다.


4살 된 딸은 신발 벗는 곳까지 와서 흔히 어린이집에서 배운다는 배꼽인사를 했다. 하나뿐인 딸도 없고 이제 진짜 이혼했구나 실감했다. 지금 당장 법적 서류상 이혼은 아니지만 법원에 서류 제출하러 가는 날이 올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내일 나의 사업장에 가서 결정을 해야 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그날 밤은 장거리 운전 탓인지 잠들게 되었다. 깊은 잠에 빠져 슬픈 마음을 헤아릴 시간도 없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알람도 잠시 꺼두었다. 커튼사이로 햇빛이 비쳐 아침을 알게 되었다.


눈을 반 틈 뜨며 시계를 보니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몸은 일어나야지 머리에서 명령했다. 세수하고 난 뒤 부엌으로 갔다. 밥솥 뚜껑을 열어 살펴보니 시간이 꽤나 지났다. 밥에서 이상한 냄새도 나며 마른밥알도 보였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바닥에 조금 남아 있었다.


선반에서 밥공기를 꺼내어 숟가락으로 마른밥을 긁어 보았다. 아이스크림 같이 한 숟가락씩 밥공기에 담아냈다. 밥솥 뚜껑을 닫고 식탁 위에 둔다는 게 돌아보니 무언가 없다. 전처가 이사 나갈 때 식탁을 가지고 갔다. 다른 방에 들어가 뒤져 보니 밥상이 있었다.


방바닥에 밥상을 편 후 반찬이 무엇이 있을까?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몇 가지 남아 있는 밑반찬들이 있었다. 대충 눈에 가는 대로 몇 가지를 밥상 위에 놓은 후 반찬 뚜껑을 열었다. 시간이 며칠 지난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밀어 넣었다. 맛있는 밥은 아니었다.


갑자기 혼자 밥 먹는 나의 모습을 보니 참 처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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