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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시작의 알림 #17 정리

by 홀로서기

결혼생활 4년이지만 알아먹지 못하는 딸의 옹알이 단어와 티브이 보며 재롱부리는 모습, 부엌에서 밥 준비하던 모습들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밥이 제대로 넘어가는 것이 이상하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입속으로 한 숟가락씩 밀어 넣었다.


맛있게 먹는 것은 이제 당연히 없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먹어야 행복한 즐거움이다.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자리를 일어나 먹은 밥그릇은 싱크대에 물을 부어 놓은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가냐고?’


사업장에 가서 인생 최대의 또 다른 결정을 하러 가야 했다. 옷 입고 신발 신으며 거울에 보이는 모습을 슬쩍 보았다.


왜 얼굴을 본 것일까?


잘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 눈, 코, 입 등 각자 자기 위치에 잘 있는지 궁금하여 보았다.


이혼의 시작 길에 들어선 나의 얼굴, 친구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눈물 흘린 내 모습이 어떨까?


갑자기 궁금했다.


마음속으로 ‘ㅇㅇ아, 가자.’


대문을 닫고 차로 향해 걸어갔다. 1층 현관을 나와 하늘을 보니 참 고운 색이지만 아직까지 거기까지 볼 수 없었다. 하늘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없다. 늘 일에 매여 하루를 사람 피 마르듯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본인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은 신기하다. 왠지 답답하거나 힘든 고통을 줄 때, 저 멀리 있는 것과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사람은 옆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마음에 이렇게 고통을 주는 나 자신이 미울 뿐이다.


잠시 서서 하늘을 본 뒤 나의 차로 향했다. 리모컨으로 버튼을 누르면 노란색 비상등이 점등한다. 문을 열어 유일하게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차뿐이다. 시동 걸어 잠시 10초 정도 고요히 있었다. 기어를 움직이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마음 결정은 하늘 보며 정리했다.


집을 빠져나와 도로를 지나면서 길거리의 나무와 늘 같은 곳에 있는 것은 그대로였다.


이제 이 길도 마지막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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