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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위하여 Oct 30. 2021

이혼의 시작과 홀로서기 나의 딸

나의 딸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이혼하였지만 딸 1명이 있었다. 이혼할 때는 4살이었으며 말을 알아 들었을 때쯤이었는데 현재는 중1학년생이 되어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있을 때이다.


이혼 직후 딸은 전처가 데리고 살겠다고 하여 나는 7년 동안 열심히 양육비를 빠짐없이 꼬박꼬박 주었다. 그때는 1년에 두 번 또는 세 번은 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은 해 보았다.


딸 4살이면 한 참 데리고 이쁜 짓 할 때인데 이혼후에도 나를 보는 날이면 내게 안기곤 하였다. 딸을 잠시 보고 돌아오는 날에는 늘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이 쓱 불곤 하였다. 그래서 이혼후에도 나는 열심히 일하였다. 전처와 딸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어느덧 전처의 재혼 이야기를 갑자기 듣게 되었을 때 딸의 성씨를 새아빠로 바꾸어 달라는 요청을 듣게 되었다. 그날 딸과 통화할 때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미소야 아빠가 너무 미안하다. 너무 사랑한단다 이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이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게 부모의 마음인지 왠지 시집보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딸과 단둘이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나이가 초등 5학년이 될 쯤이었는데 대화를 다 알아듣고 아빠가 어떻게 새아빠 성씨로 해 줄까 여러 번 물었다. 딸은 응 이란 말을 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의 인감을 주는 마음 결정을 하게 되었다.


새아빠도 총각인 남자가 딸이 있는 이혼녀를 4년이나 옆에서 있어 주었던 남자라 그 하나만으로 나의 마음이 승낙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서류 처리 후 가족관계 증명원에 새아빠의 이름으로 나타난 것을 보니 마음이 그냥 찹찹하였다.


이제는 딸과 보는 것도 어렵고 그냥 생일날 카톡으로 축하해한다는 글만 보낼 수밖에 없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살고 있으며 카톡의 딸의 얼굴이 바뀔 때 그렇게 보는 것이 내겐 전부인 삶이 되었다.


언제쯤 딸을 볼 수 있을까? 20살이 되면 한 번쯤 보려나 하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남기며 나의 삶 한 구석에 자리 잡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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