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과는 더욱 이질감이 느껴진다
남편은 해외에 나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주재원으로 나와 이직을 반복하고 있다. 짧게 끝날 것 같았던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이왕 하는 거 아이들이 12년 교육과정을 마칠 때 돌아가면 혜택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이곳 직장에서 업무상 능력도 인정받아 고용에는 큰 불안이 없다.
하지만 해마다 문제가 되는 건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만났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더운 날씨가 주는 동남아의 답답함, 인프라 부족으로 정서가 고픔, 아직도 주 6일을 일해야 하는 환경으로 일 년을 꼬박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 쌓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옆에 있으면 그만큼 체감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하자.
생각 속에만 있는 원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가 일 년에 한 번, 아님 두 번 양가 아버님들 제사기간엔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양가 마찬가지로, 어른들, 어머님들의 반응은 멀리 있는 자식은 뭘 해주는 것도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물론 이것도 그분들의 행동과 말을 재해석한 것이다. 감정이 들어간 해석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자식이라 직접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매달 용돈을 자동이체로 해 놓은 지 10년이 넘는다. 사실 물가상승 대비 그다지 큰돈은 아닐 수도 있지만 친구분들과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대접할 만큼을 된다고 보는데, 글쎄 액수에 대해서는 중고생이 있는 4인가구 기준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 최대치다.
친정엄마는 예전부터 가까이 있는 동생말은 잘 듣는 편이고, 내 말이라면 별로 귓등으로 듣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남다르게 말도 잘 통하고 케미가 좋기 때문에 정반대인 나는 그냥 빠져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그 사이에서 가족으로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은 이젠 가능성 0%에 달한다. 엄마의 평소 언행으로 내가 마음 접어야지 아니면 나만 괴롭다. 우리 엄마라는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공감이라는 것을 주지 않아서 나도 크게 공감해 주고 보듬고 안아주고를 못 한다. 그냥 그들과 에너지가 다름에 감사할 뿐이고 나를 낳아주신 분이라 감사하다.
하지만 남편은 모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모친도 아들을 걱정하고 아끼고 예전 시대 아들 사랑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계시다. 나는 우리 어머님이 연세도 많으시지만 배움을 계속하시고 계속 성장을 추구해 오신 분이라 정말 존경하고 삶의 자세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남편이 화를 내며 전화를 해 왔다. 한국에 가면 크고 작은 마음을 다치는 일이 매번 일어났다. 그때마다 남편은 자신의 가족들이 자신에게 너는 외국 살아서 잘 모르니 가만히 있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장소만 다른 곳에 있는 것이지 원하는 정보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데 네가 뭘 알아서라고 말한다니, 가족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 그건 기분이 드는 사람의 문제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존중하며 살아왔다고, 가족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돌아온 자식에게 네가 아는 건 없고, 넌 그런 나라 살아서 잘 모르며, 빨리 돌아와서 얼른 인간처럼 살아야 할 텐데 라는 걱정은 정말 개나주고 싶다. 나는 화를 내는 남편의 편이다. 억울함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남편에게 나도 같은 편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나의 남편도 자신이 옳음을 강하게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일하는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알고 어떤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지 알기 때문에 그의 가족의 차가움이 야속할 뿐이다.
어머님과 잠깐 통화했지만, 나는 어머님이 평소에 그런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 넋두리 반, 정중한 책임을 물었다. 나도 솔직하게 말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나이 앞에 어떤 것도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 드신 어른에게 아무리 이해를 구한다 해도 이젠 그 능력밖에 있는 일이라 내가 믿었던 어머님의 능력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엄마야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어서 바라면 안 되는 것이었고, 어머님도 이제 연세가 많을 시니 자신의 말만 계속 맞다고 억울하다고 반복하고 계셨다. 답은 없다.
그냥 뭐든 잘한 게 없다. 그래서 이젠 대화를 해 봐도, 화를 내 봐도, 내 사정을 좀 고려해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해도 안 먹힌단다 하는 지경까지 왔다. 꽤 노령이신 어머님도 안타깝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연세가 드신 것이다. 나이 앞에 장사가 없고, 그 앞에 어쩐 계급장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 나이가 들면 모두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줄어들까?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도 그럴 수 도 있고, 나이가 들어 뇌가 굳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내가 나를 봐야 한다. 내 모습을 돌아봐야 하고, 독서를 해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어려워도 엔트로피를 거슬러야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대로의 미래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