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할 때마다 나는 너 난독증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겐 사랑하는 자매가 하나 있다. 내 마음을 자세하게 서술하자면 그래서 내 속이 시원하자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하고 어릴 적부터 바라던 존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우리 엄마 딸이다.
몇 개월 전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가 나를 낳았다는 산부인과에 같이 한 번 가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엄마 뱃속을 통해 출생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의식이 있었을 적부터 안 맞던 우리 엄마였기에 나는 이제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실마리를 혹시 엄마가 내 생모가 아니면 납득이 된다는 가정에서 한 번 말해봤다. 너무나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 안 되는 우리 엄마와 그녀의 딸이 있다.
어려서 엄마와 아버지가 다투시면 나는 집 나간다는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어쨌건 나간다는 사람 다리 끄덩이 잡아 뭐 하니, 하는 생각이 어릴 때 대략 7-9세부터 있었다. 하지만 엄마 딸은 달랐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엄마 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았다. 무조건 매달렸다. 아마 엄마도 그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결심은 실행을 하는 척 쇼만 하는 말이 앞과 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40 넘어 우리 엄마의 실체를 알고 경악을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없는 말, 입에서 나오는 말, 농담이라도 그냥 하는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받아들여서 한 두 번 짜증 난 게 아니고, 한 두 번 혈압 오른 게 아니었다. 왜, 농담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하며, 그것이 상대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그녀의 능력밖의 배려였다. 여기까지 그녀를 이해하는데 40년이 걸렸다.
엄마는 치매 3년 3개월 차 지나고 있다. 치매 진단받기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제대로 병원 진료와 약물을 치료받을 수 있었던 시간도 1년 걸렸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인지 직면하기 두려운 선천적인 겁쟁이여서 아무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쩡하다고 했다. 옆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치매 발병 전, 전업주부인 나에게 "너는 당장 써먹을 재주도 없는데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는 멘트를 던져서 너무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즈음 여름에 한국에 휴가차 갔는데 집 안에서 홈트레이닝하는 나를 보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깔깔대고 웃어서 황당했던 경험도 있다. 엄마를 정상인의 범주에 놓고 보아서 이해가 더욱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이미 진행 중이었던 듯하다. 그러고 보면 이해가 된다.
미용실을 30년간 운영하신 엄마는 나름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는 데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딸의 의견은 전혀 물어보지 않고 다른 이들의 인정만 중요한 귀 얇은 미용사였다. 자신의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해 주는 바가지 머리가 너무 혐오스러웠다는 사실은 전혀 알 리가 없는 심리 폭행자였다. 너무 원망스럽다. 언제 한 번이라도 넌 머리가 맘에드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K-장녀로 착하게만 엄마말 잘 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소녀가 내 머리 너무 싫다고 말하기엔 힘들었다. 그 증오는 복리 이자를 쳐서 아주 큰 분노와 증오롤 자리 잡았다.
이번 어린이날엔 휴일이 길었다. 요양 보호사님이 출근하지 못하셔 누군가 엄마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서울서 유명한 미용실에서 한 자리하는 엄마딸은 일해서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엔 비핵기 타는 내가 가서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엄마는 긴 내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불쑥 말했다. 아무리 인지가 바닥이지만 이게 인지랑 상관있나. 양심이랑 관계있는 거지. 나는 나이 39세쯤이 되어서야 긴 머리를 할 수 있었다. 두피가 지성인 탓에 머리를 만 24시간 만에 세정력이 좋은 샴푸로 감아주어야 했다. 시중에 쉽게 살 수 있는 샴푸로는 감아도 효과가 덜하며, 좋은 샴푸로 감아 주었을 때 머리가 길어도 두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칭 전문가라는 분이 직계가족이라면서, 돈 받는 고객에게만 굽신거리고 자기 딸이라는 존재에게는 딸의 욕구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딸? 다 집어 치우리 그래라.
나 혼자 터득하고, 알아낸 방법이다. 어린 나의 욕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능력밖의 일이었다. 물론 그분의 고달픈 인생을 내가 다 비난하고자 함은 아니다. 난 그때 어렸고, 아이였고 사춘기 짜증 많고 예민한 까다로운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욕구, 마음에 닿은 공감은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인정에 목마르고 사랑에 고팠다. 그래서 지금은 부정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지 않나 싶다.
본론으로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엄마 딸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제 작은 나이도 아닌 그 딸이 엄마의 유전자를 많이 받아서 엄마와 비슷하게 마음이 예쁘지 않다. 책도 안 읽어서 카톡 할 때 상당히 불편하다. 메시지로 대화할 때 소름 돋게 느껴지는 불편함은 나만 느끼는 걸까. 늙어가며 책 안 읽는 노처녀를 매력적으로 느낄 사람이 있을까. 상대방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다시 말하는 그녀의 말이나 내가 했던 말이나 같음을 모르는 그녀를 보면 철판깔은 유전자는 어떻게 저렇게도 같은지. 그래서 내가 더더욱 그들과 가족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다. 차라리 아버지가 낳아온 자식이면 좋겠고, 엄마는 키워주신 은혜를 감사하게 느끼고 싶다.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나도 점검해 볼 수 있는 인지를 가지고 분별 있게 세상을 볼 수 있게 교육시켜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엄마 딸은 좀 아닌 거 같아서 그건 엄마가 가진 게 거기까지인 가보다. 그래도 둘은 서로 사랑하니까 백년해로하고 둘이서 잘 살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어가면 나도 돌아보고, 어떤 인간이지 반성도 하고 평가를 직면한 다음 늙어가는 인생을 준비해야 할 텐데, 엄마 딸은 서울 유명 미용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자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기가 고소득 업자인 줄 알며, 손님 급을 자기 급으로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속을 까보면 일한 년 수에 비해 재산도 얼마 없는데,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는 참 눈뜨고 봐 주기가 힘들다.
교양을 쌓으면 좀 성숙해질 텐데 이미 더 쌓을 교양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태도를 보면 언제가 그녀가 마주할 미래를 기다릴 뿐이다. 그 때 크게 한 번 반성하면 책 읽기 할래? 그 전엔 잘 모르겠지.
너에게도 그런 순간이 꼭 올거야. 나는 걱정하지도 않고, 안타까워 하지도 않을게. 인생은 그런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기분들게 하는 묘한 거더라. 행운을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