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모르는 엄마, 아직도 그것이 모르는 사람
자라나면서 매 순간이 답답했다. 여러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보면 나는 답답하다는 느낌을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긴 머리 여학생이 되고 싶었다. 미용사인 엄마는 나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주변의 사람들의 인정만을 중요시했다. 나는 바가지 머리로 졸업사진을 찍었고, 나이 40이 넘어서도 긴 머리를 할 수 없었다.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길면 머리에 두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은 머리에 쌓인 기름기를 잘 제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좀 더 고품질의 샴푸를 써야 하는 것이 답이었다. 미용사인 엄마는 이것을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어린 나의 욕구엔 관심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욕구를 엄마에게 표현하지도 못했다. 나는 말 잘 듣는 장녀여야 했고, 엄마는 남의 말에만 귀 기울이는 세련된 미용사여야 했다. 우린 그렇게 그 시간에 각자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학창 시절 나는 엄마와 갈등이 아주 심했다. 나는 말만 하면 짜증 내는 어려운 사람이었고, 나와 함께 사는 식구들, 아버지, 엄마, 동생은 넌 왜 그러냐는 물음을 달고 살았다. 글쎄, 난 왜 그렇지. 나도 몰랐지만 알고 싶었다. 표정이 잔뜩 어두운 나는 왜 밝지 못하냐는 핀잔을 많이 받았고, 조금이라도 솔직한 말을 내뱉으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잘해줘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이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았다. 입을 다물고, 대화를 차단하고, 혹시 언젠가 부드러운 말로 너의 속내를 말해보라는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 되어 버렸다.
때로는 즐거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불안감은 불편하기만 할 뿐이었다. 되도록 나는 이 가족을 떠나 다른 가족과 살던지 독립을 하던지 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고 아버지가 집 팔아서 동생 영국 유학 자금 대어주는 모습을 보고는 더욱더 소외된 감정을 많이 느꼈다. 나는 지방대학 영문과를 나왔는데, 그만큼 뒷바라지해 주신 것도 감사하다. 누가 더 많이 받고 아니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당시 내 머리로는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변은 동생을 공부를 못해서 미용사의 길로 가려면, 고소득을 얻으려면 영국 유학 정도는 다녀와야 하고 그것이 동생의 미래이니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 속으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변명으로 술 마시고 많이도 슬퍼하고 우울해했다. 그것을 다시 부모에게 물을 수 없었다. 왜 나는 안 해주냐고 따질 수 도 없었고, 정확한 이유를 물을 수 도 없었다. 물어 뭐 하겠는가, 없는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후에도 계속 계속 생각해 봤지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넉넉지 못 한 집안 형편에 가만히 보니 제 앞가림하지도 못할 것 같은 자식을 지원해야겠는데, 큰 것은 어찌어찌해도 혼자 힘으로 하겠고 둘째는 아무리 봐도 길이 없는 것 같아 그 길을 부모가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나에겐 충분히 받아들일 대화가 없었다. 나의 공감은 중요치 않았다.
엄마는 74세, 치매 3년 차다.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아무리 부탁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집 전화 수화기를 자주 내려놓는다. 전화 통화를 하고는 수화기를 바로 두지 않는다. 그러면 보호사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다. 보호사님이 오지 않는 주말엔 먹어야 하는 약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곁에 없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벌어먹고 사는 직장이 여기 있는 남편과 돌볼 아이들을 두고 엄마만 돌 볼 수도 없다. 나의 가족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뭐 같은 자식이라 욕해도 달게 받겠다. 나는 엄마에게 따스한 공감 한 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전화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누워있어도 수화기를 바로 놓을 생각을 못 한다. 인지가 아주 바닥이라 그럴 수 도있고, 다시 전화가 올 수 도 있다는 말을 매일매일 해도 전혀 시정이 안 된다. 공감이 없다. 누군가 전화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수화기는 반드시 바로 놓아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런 지능은 원래 없나 보다. 공감이 없는터터 엄마가 너무 미운 이유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좌절을 준다. 이들의 행동 양식이 그러하다. 속이 여리다 하지만 공격성이 나타날 때는 같은 정도로 공격할 필요가 없다. 같은 레벨이 된다. 저질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보호사님과 통화가 되었다. 보호사님의 어떤 행동을 엄마가 불편해한 적이 있다. 보호사님에게 직접 이러한 부분이 불편하니 수정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달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엄마는 뒤로 사람을 깐다. 이모에게 말하고, 작은 딸인 동생에게 말한다. 동생은 엄마를 다시 교육시켜서 본인이 보호사님께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전달해야 올바른 순서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동생을 센터에 전화해 사람을 바꿔어 쓰느니 지금 쓰고 있는 분으로 쓰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용어를 사용했다. 엄마는 이번 보호사님과 만나면서 같은 성씨라 좋다, 성격이 좋아서 너무 좋다는 표현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른 사람입을 통해 들은 말이 보호사를 쓰니 안 쓰니, 썼던 사람이니 하는 표현은 해서 는 안 될 말이었던 것 같다. 보로사 님은 주말 동안 속이 상했다고 했다. 진심으로 엄마를 대하던 마음에서 진심이 아니어도 될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 배신감이 무엇인지 안다. 마음을 외면하는 마음. 공감이 없는 마음. 너무 잔인하고 속이 메스껍다.
엄마가 없는 사람, 부모의 뒷바라지 없이 자란 사람에 비하면 호화로운 불평을 하는 것 같겠지만 이미 없어도 좋을 부모들이었다. 너무나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서 좋았다. 절대 인생은 이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을 주어서 고마웠다. 하지만 일관된 공감결여의 태도는 나를 지치게 한다. 치매가 아니더라도 나는 엄마에게 지친다. 사실은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단지 건강하게 요양원 가기까지 최대한 건강히 살아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운동삼아 걸어야 한다거나, 식사를 잘하시라 거나, 눈 뜨고 있는 시간에 기도하라거나 그런 당부의 말은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나도 내 마음을 돌보고, 에너지를 모아서 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 지난 간 일을 곱씹고 미워하고 눈물 흘리는 일은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지 나는 마음에 닿는 말을 너무나 갈구했었는데 들어보지 못했고, 지금도 듣고 싶다. 이것도 되지 않으면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마음에 닿고, 마음을 읽고, 마음을 끄집어내는 일 만이 사람이 내게 오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누구에게도 마음에 닿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들도 그런 말 들을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부모가 해 줄 필요도 없고, 가족에게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해 주면 된다. 그래야 세상을 하루라도 더 살아갈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