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키우느라 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난 잘못한 거 없다
사는 것이 마냥 즐겁고, 매 순간이 황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과정은 예전에는 없어서 힘들었고 지금 돈이 많이 드는 이유로 힘들기도 하다.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너 잘되라고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것 알고 있다 우리 엄마도 그녀의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어머님도 없는 살림에 아이들 여럿 키워내기 위해 본인 피셜 " 평생 점심 편하게 먹지 았았다"라고 하셨다.
그래, 맞다. 자신들의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것은 덜 먹고 입고 쓰더라도 자식새끼 건사하려고 했을 것이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잘하는 말이지만, 내가 그 생을 직접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시대배경과 그분들의 성품을 볼 때 충분히 부지런히 성실하게 사신 건 인정한다.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젤 중요하게도 나에게 혹은 남편에게 생명을 주신 분들이라 감사한 정도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분들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니까.
연세가 들면서 뇌의 사고가 경직이 되는지 일방적인 사람의 방식은 너무나 아프게 꽉 껴안으면서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포장한다. 그럴 때는 참으로 부담스럽다. 많이 받아 복에 겨운 소리라 탓해도 좋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하니까 더 줄게라는 말은 자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빠져있으므로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이미 새로운 가정을 가지고 독립한 지 오랜 세월이 되어서 부모님과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아도직도 자신의 아이로 보고 마음 써 주시는 것은 감사하나 "네가 월 제대로 하겠냐"는 식으로 보는 시선이 상당히 불쾌하다. 그래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줄 알았던 어머님 마저 다르지 않음을 알았을 때 나도 그분에 대한 실망을 상당하다.
엄마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내가 엄마의 말, 엄마의 생각의 흐름이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면 많이 가진 네가, 젊은 네가 이해하라고 한다. 왜? 여기서도 옳고 그르고, 논리적인 흐름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잣대가 등장하는데 다 소용이 없다. 그냥 난 못 하겠으니, 네가 해라. 이해. 이런 식이다.
나도 더 이상 젊지 않다. 소위 나이라는 걸 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이해는 네가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사고하고 싶지는 않다. 공평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리스트에 한 줄 추가요. 그럼 나이로 얻으신 연륜과 인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만큼의 이해를 얻는 것이 나이와 맞바꾼 인생의 지혜라고 말하는데 안타깝지만 난 그런 분을 실제로 뵌 적이 없다. 진짜 책애서 만 존재하는 성인의 예일뿐인가.
자기 자신의 사고를 계속 인지했으면 좋겠다. 그 사고가 어떤지를 점검하면 좋겠다. 한쪽으로 치우쳐가는지 점검하는 노력도 하면 좋겠다. 나의 진심을 나의 말로 정확히 표현하면 좋겠다. 그것은 상대가 내가 의도한 대로 알아주면 좋겠다. 그러헤 생각할 수 도 있겠다는 이해의 능역을 갖추면 좋겠다. 나의 감정은 어떤지 살피면 좋겠다. 감정을 다루어서 그것이 나를 누르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 나이 든 부모님을 탓하는 말들은 아니고,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를 무기로 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