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
나의 원가족엔 세 명의 여자가 있다. 세 명은 잘 맞을 수가 없다. 둘은 잘 맞고 하나는 항상 사이드에 비껴져 있다. 나의 나이 40이 넘으니 거의 40년 간 그랬다.
둘은 잘 맞는다. 대화가 잘 통한다. 생활습관, 언어습관 기질이 비슷하다. 하나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한 어머니가 두 딸을 낳았으니 하나는 닮고 하나는 덜 닮았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과연 우리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안 맞기 때문에 내가 출생한 산부인과에 가서 확인해 보자고 했다. 아직 미확인이다)
1. 생활습관
두 사람의 직업이 미용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는 어릴 때 미용을 업으로 택해서 오랫동안 미용업을 하셨고 공부에는 재주가 없던 동생의 앞길을 걱정하던 아버지가 미용으로 유학을 보내서 후에 본인 앞가림하는 직업을 만들어주자 해서 엄마의 딸도 미용사가 되었다. 미용실 업이라는 것이 정시에 출퇴근이 이루어지는 업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시간의 융통성은 있다. 미용사의 딸로 30년 정도를 살면 그 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인지도 알고, 생활리듬을 맞추기 힘든 직업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엄마는 원래가 몸을 쓰는 것을 싫어했고 움직이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엄마는 물론 옛날 사람이라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할머니들이 소나무에 등을 치는 운동을 하지 않는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땀나는 게 싫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보기엔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는데도 움직임이 거의 없고, 주로 누워계신다. 나는 비꼬는 말로 "어디가 부러지거나 하면 누워있을 명목이 있어 좋겠구먼, 사지가 멀쩡해서 좀 거시기하다." 고도 말해 봤다.
엄마를 이해하자면 치매로 뇌의 기능은 저하되고, 더더욱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우울과 무기력이 함께 있다고 본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고 활력을 찾는다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식사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딱 정시에 정해놓고 먹는 것이 올바르지만, 엄마와 나의 원가족은 완전 고무줄 식사시간이었던 것을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나도 결혼 후 남편과 식사시간을 조율하기 너무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하루에 패턴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2. 자기 주변 정리
엄마는 방송에 나오는 쓰레기 집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버려야 할 물건을 쌓아두고 산다. 엄마 혼자 쓰는 방 3개, 26평 집에 방 2개에는 짐이 가득한 상태이다. 아무리 버리자, 정리하자고 해도 엄마는 버리면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버리면 다시 사야 해서 라는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슬며시 쓰레기도 아무 데나 섞여있는 짐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안타깝다.
몇 년 전에 갑자기 방문했던 동생 집도 비슷했다. 물건에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지 예쁜 쓰레기들이 정리도 되지 않은 채 널부려 져 있었다. 대한민국 1등 깔끔이라고 하면 서러울 남편은 그것이 사람 사는 집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며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긴 했다. 동생도 집착과 저장 강박이 있는 것 같았다. 사고 싶은 것은 사서 정리하지 않고 저장만 해 둔 것 같았다. 정리하지 못하는 엄마가 보여준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정리를 너무 못 했는데 아무리 정리를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보고 배우는 것이 무서운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20년은 원가족과 살고 20년은 남편과 살아서 원가족부터 이어온 습관을 100% 뜯어고쳤다면 거짓말이고, 무엇이 잘못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노력한다. 물건은 많이 사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버려야 한다. 나의 주변, 집은 깨끗해야 한다.
3. 언어습관
정확한 표현을 잘 못한다. 엄마는 치매가 진행 중이라 언어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거 뭐더라, 생각이 잘 안나네. 저, 그 , 거기, 저기, 어디더라 등등
"오늘은 식사를 무엇과 하셨어요?"
"별 거 안 먹었어."
" 그 별거가 뭔지 알려주면 안 될까?"
요즘의 엄마와 나의 대화는 스무고개 형태를 띠고 나는 정확히 무엇, 어디 등 정보를 알고 싶어 하고 엄마는 생각이 안 나는 것을 자꾸 떠 올려야 하는 대화를 하고 있다.
동생과 대화할 때도 동생은 정확한 표현보다는 두리뭉실하고 대충 말하곤 하다.
"내가 다음 주인가, 다다음주 인가에 집에 가서 엄마 병원 모시고 갈 거야."
"그래? 정확한 날짜는 모르는 가봐."
"대강 그즈음에 가서 일 볼 거야."
그때 가서 보고, 저 기해서 그래 하면 될 거 같아. 등의 모호한 표현 투성이의 대화를 한다,
정확한 예시가 떠오르지 않는다만, 이제 그녀에게 정확한 정보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하나?라고 되물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4. 이 외에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결론을 내리기보다
" 딱 보면 알잖아"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점쟁이야? 어떻게 알아? 아마도 직감이 발달한 사람일 경우가 대개 그러한데, 아마도 빛처럼 스치는 대로 감을 따라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라 이해해 보자.
그러나 일을 할 때는 제외하고 그녀들의 너무나 빠른 판단을 사람에게 주로 적용하기도 하고, 딱 보면 안다는 말은 자신들의 감은 정확하다는 확신으로 들려서 감히 반박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만사를 다 아는 것 같은 스스로 믿음을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 길게 봐야 하지 않을까.
5.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옳음을 강요
이제와 생각하면 논리성도 하나 없는 엄마의 말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해서 많이 힘들었다. 어려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나는 엄마가 하는 강요, 내 말은 들어야지, 넌 장녀고 언니니까,라는 말이 거북스러웠다. 그리고 뭔가 계속 잘못되고 있는 걸 알았지만 표현은 짜증으로만 했다. 식구들은 나의 짜증을 불편해하다가 다들 나에게 그만하면 안 되겠냐고 했고, 넌 왜 그러냐고 했다. 그들이 어느 누구라도 나에게 적절한 대화상대가 되어주지 못함을 인식하지는 못 했다. 사춘기에 유의미한 대화가 없는 채로 나는 신체화증상을 지속적으로 달고 살고, 청소년 우울증도 있었다. 이것도 나중에 내가 다 알아낸 것이다. 신체화 증상은 왜 일어나는지, 내가 편두통은 365일 왜 달고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왜 소리를 질러대는지, 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짜증만 내는지 우리 부모님은 알아내지 못했다. 존중이 없는 강요는 그냥 폭력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나에게 폭력을 가한 것뿐이다. 공감을 받은 동생은 나를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공감을 받지 못해 어려웠던 기억으로 나의 원가족과의 추억은 가득 차 있다.
후에 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맞다 아니 다를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모든 부분에서 그랬다.
몇 년 전에도 내가 옷을 고르려고 하는데, 옷 가게 근처에 있던 동생에게 옷 픽업을 부탁했다.
" 언니, 이 옷들 받아서 보내주면 되는 거야?'
"어, 내가 주문은 했는데, 그걸 보내주면 돼."
근데 언니가 고른 거 A 보다 B 가 더 나은 거 같아. B 어때? B가 더 낫지?
에이, 내 말이 맞다니까, B가 더 나아. 내 말 듣고 B 해."
다시 말하지만 직업적인 직관력이 뛰어나서 아마 본인도 직감에 의존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에게 권유 혹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로 해야 했다. 물론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었고,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고, 좀 더 예쁘고 좋을 것을 주고 싶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결론을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몰고 가는 것은 불편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그녀가 존중을 표현한 적은 없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이라는 표현은 너무 자주 했다. 난 항상 고마워라고 한다. 그러면 그녀는 '우리 사이에 뭐, "라고 한다) 그녀의 선택을 따른 후엔 속이 쓰려왔고 왜 나는 그 애 말을 듣고 있지라고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는다. 한 가지 사건을 또 마음속에 적립한 것이다.
존중도 없었고, 혹여나 그 자신이 옳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겸손도 없었다. 이래서 그녀와 대화한 후엔 화장실에서 덜 닦고 나온 듯한 찝찝함이 느껴졌다.
6. 복잡함, 어려움을 싫어한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로 어떤 음식을 드셨나, 장볼 것은 있는가, 목욕은 어제쯤 하실 건가를 자세히 물어본다. 엄마는 두 번, 세 번만 물어봐도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 묻냐 내가 너 시키는 대로 해야 하냐며 화를 낸다. 내가 자꾸 묻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엄마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한 번에 주지 못한다. 그러면 여러 번 묻는 수 밖에 없는데 엄마에겐 짜증스럽고 복잡하게 여겨지나보다.
나는 정확함, 확실한 정보를 원하는데 엄마나 동생은 그저 두루뭉술한 대화를 주로 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되 묻거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내가 귀찮을 때는 나도 그들의 대화법을 따른다. 앞의 글에서 동생에게 너가 말하는 방식이 '아' 가 다르고 '어'가 다른 화법이라고 설명하자 괴성을 질러버린 이유가 그것이다. 화법이라는 것, 그게 뭐길래 그런 걸 따지냐는 뜻이 괴성속에 묻어 있었다. 속 뜻은, '듣기 싫어!!!!!!!!"하고 외친것이다. 사실 "너 뭔데" 한 방에 완전 뿔이 난 것이다. 조금만 복잡하게 말하거나 그녀들을 귀찮게 하면 이런 상스러운 욕이나 반응을 마주해야 한다. 엄마도 보통으로 짜증내고 욕하고 나를 차단하려고 든다. 그녀들과 나는 에너지가 다르고 대화방식도 다르다. 결론적으로 너무도 맞지 않다.
나는 엄마에게 받지 못한 것을 과도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꾸 곱씹어도 부당하거나 아이 감정이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도 엄마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묶어 생각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녀도 태어나 보니 엄마, 나와 같은 사람들과 가전족이 되어있을 것이다. 엄마가 그녀에게 공감을 더 주었다는 것이 나에게 더 크게 느껴져 그녀를 오히려 싫은 존재로 인지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것을 질투라고 한다면 어릴 적 나는 가졌던 감정이지만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나와 실제 가족으로 엮여서 이 생에서 만났지만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좋은 관계로 이 생을 보냈으면 한다. 미워하는 마음, 서운한 마음을 모두 이 생애서 풀고 내 생이 존재한다면 (난 그렇다고 믿지만) 가족처럼 가까이 묶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들이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고, 애증의 관계에서 받은 사랑도 그들의 마음도 감사하다. 고맙고, 잘 살면 좋겠다.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