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살고 있는 아수라

한 얼굴에 양면이 아주 다른

by Min kyung

나는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일반화시키기엔 내가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확실히 있다고 말할게. 마음에 두 얼굴이 있다고. 있어, 착한 나도 있고, 못 되게 생긴 나도 있어. 어느 한 얼굴이 일관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이럴 땐 네가 맞네, 저럴 때는 내가 맞네하고 끊임없이 다투는 한 얼굴에 두 사람.




한국 가족들에겐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내놓은 존재들인가 보다. 한 부모아래에서 자식들은 부모와 자주 만나고 형제들과 힘을 합해 나이 든 부모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식의 행동 매뉴얼 같은 것이다. 이 매뉴얼대로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외 나와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가지는 죄책감과 한국에 남은 다른 자식들이 주는 부담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서 충돌한다.


"나도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 하지만 거리가 멀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화를 해는 방법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 외에는 부모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


"너네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자꾸 대더라. 거리가 먼 것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너네 얌체 같다는 생각은 안 하니? 거기다 외국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막말로 가까이서 모시는 거 신경 쓰는 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하는데 너네는 숟가락만 얻는 거 아니냐?"




양 쪽의 입장을 아주 단적인 대화로 직설적이게 한 번 표현해 보았다. 이미 한 판 뜨고도 남을 대화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진심의 단면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있는 자식들은 끔찍하게도 부모를 챙긴다. 우리 부부의 경우, 양가의 어른을 주로 보살피고 있는 자식들의 공통적인 성향이 그러하다. 아주 부모님을 극진히 모신다. 감사하다. 책임에서 한 발 뺄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지극, 극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적극성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형제로 자매로 살아봐서 믿기도 하지만 몸서리쳐지기도 한다.




나는 공감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랐다. 공감을 원했으나 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팠다. 공감 빼고 내 부모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잘 먹이고 입혀줬으며. 본인들의 사랑의 방식으로 키웠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받고, 내가 원한 것을 받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맘에 드는 유전자를 주셨고, 나는 교육을 잘 받았다. 스스로 학습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인지 수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즐거웠던 추억, 부모님이 자신들만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결핍이 더 부각되고 내가 아팠던 것을 더 잘 기억하고 그를 따라 지난날의 스토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를 근거로 하자면 나는 크게 한국 부모님의 노후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또한 아주 극성맞은, 부모님과 잘 통하는 자식이 있다. 나는 도움도 별로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고, 아직도 내면의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극성맞은, 공감 잘 받은 그 자식도 혼자서 아마 힘이 많이 드나 보다. 근데 많이 받았는데 왜 무엇이 문제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내 부모에게 나도 자식 된 도리, 내가 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그래야 부모에게 받은 게 있니 없니 해도 완전 철판으로 '나한테 해 준 게 뭐야, 나 몰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쎄,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엄마 딸과 나와의 온도차이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고생하는 딸과 외국 사는 딸일까.


이런 기억이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엄마가 아버지랑 싸우고 집 나간다고 할 때, 엄마딸은 엄마 가랑이를 붙잡고 안 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퍼포먼스를 했고, 나는 나가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 없다는 체념 혹은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드렸다.


나에게 있는 두 가지 얼굴은 오늘도 각자의 목소리로 팽팽하게 대립한다. 여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도 도와주겠다고 의사도 밝혔으나 그녀가 거절했다. 그렇게도 힘들다면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는 데 도와달라고 하고, 고맙다고 하면서 도움을 받아라. 지금 힘들다고 하는 것은 도움을 무시했기 때문에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기 바란다.


엄마딸도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힘들 것이고, 새벽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엄마 전화에 직장일에 힘들 것이다.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한다고 하자.


근데 당최 예부터 그녀가 보여온 행동 네 가지(다른말로 싸가지라고도 한다)가 내 마음에 하나도 예뻐 보인 적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엄마 딸이라고 부를까. 정말 엄마의 미운 구석을 많이 닮은 엄마딸은 정말 나랑 안 맞는 구석이 많다. 그녀에겐 딱히 잘못이 없지만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그냥 엄마랑 묶어서 생각하고 싶다. 그들은 가족, 나는 가족 아님.



사실 쪽수 싸움에 거 지는 건 내가 주장하는 옳은 것 그른 것이 받아들여지긴 애초에 글렀다. 두루뭉술 세상에서는 날 선 정확함은 너무나 복잡하고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어릴 때 두루뭉술 사고방식, 비논리로 정리가 안 된 가정에서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아이가 성장해서 그 세상의 진실을 마주 하고 실체를 알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세상에 나와 우물이 좁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서 우울로 돌아가 여긴 너무 좁아,라고 말하지만 우물에 살고 있는 개구리들은 사는데 지장이 없다며 넓은 세상 따위는 보고 싶지도 않고 나가는 길이 복잡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쪽수로 밀리는 개구리는 그들의 대화에서는 넓은 세상에 대해서는 모른척하고 대화해 주어야 하며, 그들의 대화방식에 맞추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세상을 알려준다 한들 그들에게 자극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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