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처음부터 느낌을 따라야 했는 지도 몰라
아주 이상한 말로 들릴 수 도 있겠지만, 때때로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 간간히 드는 생각이 아주 가족이 없는 것이나 매 한 가지이겠구나였다. 잘 키워주시는 부모님, 동생,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가족이 있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 드는 생각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놀라운 건 그때 그 생각과 지금 생각이 바뀌지도 않았고, 어떻게 그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변호사를 찾으면 되고, 의학적 문제가 있으면 의사를 찾으면 될 거 같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은 어디로 가서 의견을 구해야 할까. 상담도 받았다. 내가 처한 문제- 어린 시절부터 마주해 온 문제를 바로 보긴 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 초등 졸업도 하지 못하고 남의 집살이부터 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인생으로 보면 안타깝지만, 그 개인이 공감을 알고 자식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간단한 문제였다. 더군다나 엄마는 엄마인생을 그렇게 내버려 둔 그녀의 부모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자식으로 엄마의 생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 지, 문제가 무엇인 지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무엇을 요구한들 불가능한 건 당연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내가 결핍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능성 제로에서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처음에 나의 가족들과는 연결할 수 있는 점이 없어라고 생각한 것과 지금은 무엇이 다른데?
결론은 만남의 횟수를 줄이면 되고, 부딪히지 않으면 갈등의 빈도는 줄어드는 것 아닌가. 맞지 않는 상대, 껄끄러운 상대와 만나는 것은 나의 영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나는 영적으로 해탈을 위한 관계를 태어날 때부터 만난 셈이다.
지금 마음은 다시 원점, 공부를 하기 전, 상담을 받기 전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만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줄 뿐이다. 결론은 처음터 정해져 있었는데, 내가 영적으로 성장을 해서 그들을 좋은 마음을 갖고 보내줘야 하므로 공부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겠다. 관계에 대한 기대, 노력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잘 가라, 둘이서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는 치매 3년 차이고,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동생은 엄마와 같이 살 지는 않지만 어쩠든 같은 한국 땅에 있으니 나보다는 가깝다. 나의 최초기억부터 엄마와 더 잘 맞았던 동생은 엄마와 아직도 각별하다. 나보다 엄마를 더 챙기고 위하고 사랑한다. 내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을 때 처음에는 우물거렸다. 두 번째 제안했을 때는 화를 냈다. 엄마를 병원에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급발진에 놀랐고, 나는 점쟁이가 아니어서 화가 났다.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하지도 않고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나.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엄마와 싱크로가 유사한 엄마 딸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조마조마하다. 어떤 안 맞음이 또 일어날까 싶어서다. 나는 그런 예기치 못한 갈등이 너무 싫다. 그런 감정상 함이 이제는 너무 싫다.
여태껏 그 갈등이 싫어서 그냥 내가 지거나, 참았는데 이건 지고 참으며 관계를 계속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내가 정리한 관계들처럼 정리하면 된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으며 엄마와 엄마딸도 노력이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꼴이 된다.
나는 내가 엄마인 다른 가족이 있고, 떠남은 정신적인 떠남을 의미한다. 마음에서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엄마와 엄마 딸이 잘 살도록 빌어주고, 그들에게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잘 가, 잘 살고. 건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