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했던 말 할게
동생아
너를 최초로 기억할 때부터 별로 좋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와.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네가 불쾌하거나 내가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들과 함께 올라와서 그럴 거야.
아주 처음으로 가자면 나의 기억 속에 넌 거짓말쟁이야. 어릴 적 기억에도, 아마도 넌 어린아이였는데 뭘, 하겠지만, 엄마의 진주를 가지고 놀다 소파 밑에 굴려둔 적이 있지. 너를 야단치는 아버지께 있는 대로 말하기 두려워서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았지. 아버지의 히스테리 한 집요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내가 그랬다고 거짓자백을 하고 야단을 맞고 상황을 빨리 종료시켰어. 그때 이후로도 아버지께 야단을 많이 맞았던 너와 관련된 기억이 많아. 야단을 맞더라도 잠시 꾸중을 맞으면 될걸, 그 잠시를 못 참는 너를 나는 많이 원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너를 보면 그때의 원망이 다시 올라와.
그런 기억들, 나를 감정적으로 흡수할 수 없는 엄마, 그 엄마가 감싸고도는 그녀의 딸, 당연히 나는 너에게 미움이 크겠지. 내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대상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나에겐 자리가 없는 그녀의 마음엔 항상 작은 딸이 차지하고 있었어. 유난히 유난하고, 부산스럽고, 명랑하게 보이는 엄마를 똑 닮은 아이였어. 그런 유난한 아이를 아버지도 엄마도 말썽쟁이라 생각하면서도 특별하다고 버블을 씌우더라. 그리고 영국 유학을 보내줬어. 누구에게 많이 주고, 안 주고 하는 문제가 아니야. 그런 건 내가 느끼는 것에 비하면 나에겐 쉬운 문제야. 왜 그랬을까? 왜 나의 부모는 나의 감정 따위는 보듬어 줄 생각을 못 했을까? 지금은 알지. 그들은 그것을 보듬어 줄 능력이 없었어. 미안했겠지. 그리고 그들의 무능을 어떻게 이해를 구해야 할지 몰랐겠지. 비겁한 사람들이야.
나는 다쳤어, 마음을 많이 다쳤어. 이 세상에 나와 육신을 입혀주신, 길러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해. 하지만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어. 세심한 마음이 자라날 때 들여다 봐 줄 수 없었어. 그래서 다쳤어. 나도 마음을 닫았어. 그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는 너에게도 닫았어. 나도 떠나고 싶은 어학연수, 나에겐 기회가 없음을,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나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어. 최소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해 주지도 않았어. 어렸던 나는 마음속에 물음표만 키워갔어. 넌 나름대로 살아간다고 힘들었겠지만, 글쎄 엄마 아버지는 있는 걸 몰빵한거야. 다시 말하지만 돈이나 물질을 더 많이 줘서 널 미워하는 게 아니야. 어떤 설명도, 상황에 대한 설명도 없었어.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면 내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았겠지.
마음이 어떤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건 지금 너와 소통이 힘든 것과 변함이 없어. 니도 네가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 남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멍청한 인간아. 병신아
마음속에 O, X를 정해놓고 O 인 것 같은 말을 하면 좋아하고 X인 말을 하면 정색을 하고 덤비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만 참으면 관계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나를 지켜주지 못했어. 그래서 소통이 답답한 점이 많았지. 이젠 나를 지킬 거야. 지구상에 관계할 인간이 남아나지 않는다 해도. 그런 관계를 다 정리했어. 핏줄이라고 하는 것들만 남았는데, 그것들 마저 아니라고 하면 정리하려고.
한 때 나에게 가족은 없어도 되겠다 생각했었어. 나만 나무라고, 신경질 내는 나의 삐죽함을 모두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가족은 없어도 되지 않겠나 생각헀어. 돌아 돌아온 지금에도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예전 생각이 맞았네. 진짜 손에 뭐라도 있으면 범죄자 될 거 같아.
아직도 날 잘 모르나 본데, 나는 매듭은 풀어야 하고 속에 쌓이면 말로 하든 짚어야 다음으로 갈 수 있어. 너나 엄마처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그냥 뭐든 후루룩 넘어가지지 않아. 그렇다고 치자라고 자주 말하는 엄마의 말이 제일 싫어. 입을 아주 꿰매어주고 싶다. 이번도 마찬가지인데, 난 이제 포기하려고. 피가 섞인 들, 이미 떨어져 산 세월이 더 많아서 남보다 못하지. 엄마 네가 데려가고, 나한테 연락하지 마. 그리고 뭐가 되었든 나에게 의논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니 돼먹지 못한 화법에 관해 말했을 때 소리 지르며 대화가 끝났지? 왜 그에 대해 설명이나 대화할 생각 안 하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대화할 용기가 없다면 그냥 그런 줄 알게. 이젠 또 따져 묻는 그런 행동도 하기에 지쳤다. 이렇게 너무 다르고, 이해 안 되는 관계이니, 나는 다 접으려고 한다.
내가 몇 해전 울면서 너랑 통화한 적 있지? 엄마는 치매고, 엄마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분노를 드러내며 전화할 때. 그 해 여름에 나는 사실 엄마를 데리고 정신과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하나 생각도 했었는데. 내가 느끼는 분노가 너무 커져서. 근데 거기다 너 나에게 뭐라고 해 했니?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톤을 낮춰 말하라고 했지? 세련되지 못하게 왜 그렇게 말하냐고. 썩을 년아. 넌 왜 세련되게 말 못 해? 이해 못 하는 건 너 아니냐? 세밀하게 말했잖아, 니 썩을 화법이 틀려먹었다고. 넌 왜 악쓰고 대화를 방해하고 마냐. 그럼 해명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냐. 그게 강남스타일이냐. 엄마랑 둘이 잘 살아. 내 가족에게 연락하지 말고, 둘이 살아.
이만하면 악연으로 엮어도 지리지리 한 악연이지 싶다. 악연은 나에게 계속 고통을 주고 영적인 성장을 하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 너무 힘들다. 엔간한 인간관계면 딱 끊을 텐데. 유지하면 성장이라니, 얼마큼 성장하라고 이러십니까. 오 주여, 부처님, 천지 신령님.
마음속에선 벌써 수십 번 그들과 이별했다. 그리고 서서히 내려놓고 이젠 정말 새카만 재만 남은 거 같다. 엄마와 오랜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말년에는 거의 내려놓는 마음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아버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력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는 엔트로피는 악이다. 악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를 보았다. 그의 힘으로는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엄마 +1 엔트로피 제곱이 되어버린 악의 무리를 바꿀 수도 없고 굴복시킬 수도 없다. 대화를 시도한들 이해도 못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하게 말한다며 화낼 것이고, 너무 오해하고 있다며 한숨 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우린 에너지가 맞지 않다고 하자. 그리고 그 에너지가 맞는 사람들과 살아라. 나는 아니니까. 이쯤에서 접자.